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전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59회>전이 2025년 12월 27일(토)~2026. 3월 28일(토)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77명이 그린 약 385점의 원화 작품과 이탈리아 수상 작가 14인 특별전 등 다채로운 작품이 전시됩니다.

예술의전당 (출처.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1988년 음악당과 서울서예박물관의 개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예술의전당은, 1990년 한가람미술관과 예술자료관, 1993년 오페라하우스가 차례로 완공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문화예술 창달’,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설립 목적 아래, 7개의 공연장과 3개의 미술관·박물관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은 국가 차원에서 ‘예술을 위한 종합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구현한 첫 사례로, 단순한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넘어 한국 현대 문화정책과 예술 제도의 흐름을 담아낸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일대에 자리한 예술의전당은 1984년 착공해 1988년 문을 열었으며, 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시대적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개관 당시 명칭은 ‘서울예술의전당’이었습니다.
예술의전당을 이루는 건축과 공간 역시 이러한 상징성을 품고 있습니다.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은 한국 전통 건축의 처마 곡선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을 지니고 있고, 단일 건물이 아닌 여러 전문 공간이 모여 하나의 ‘문화 캠퍼스’를 이루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오페라와 발레가 열리는 오페라하우스,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는 음악당, 연극극장과 자유소극장, 한가람미술관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야외광장과 서예관까지—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점은 예술의전당이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예술의전당은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등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 창작을 지원해 왔으며, 해외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 초청, 대규모 기획전과 국제 전시 유치를 통해 국내외 예술 교류의 장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더불어 예술 교육 프로그램과 아카이브를 통해 예술의 생산과 유통, 향유가 한 장소 안에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한편 개관 초기에는 ‘엘리트 중심의 예술 공간’, ‘도심과 다소 떨어진 위치’, ‘생활문화와의 거리감’이라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당시 남부터미널 일대는 도심 외곽에 가까웠고, 1990년대 이후 대안공간과 독립예술이 활성화되면서 예술의전당은 제도권 예술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의전당은 대중 친화적인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야외 및 무료 공연을 늘리며, 디자인·사진·미디어 전시와 젊은 관객을 위한 기획을 통해 점차 그 스펙트럼을 넓혀오고 있습니다.

한가람미술관(출처.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1990년에 문을 연 한가람미술관은 2003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6개의 전시장과 수장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실을 바탕으로, 해외 명화와 거장 중심의 전시를 통해 미술을 ‘교육’이자 ‘문화 교양’으로 소개해 온 한가람미술관은 매년 고대문명을 소개하는 전시회부터 현대 미술까지 평균 50여 건이 넘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하여 주최한 주요 전시는 <반 아파르트헤이트전>, <유럽공동체신진작가전>, <칸딘스키와 아방가르드전>, <고대 이집트 문명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전>, <램브란트판화전>,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전>, <오르세미술관 한국특별전>,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쿠사마 야요이전>, <페르난도 보테로전>, <니키 드 생팔전> 등이 있습니다.


이미지 제공. (주)CCOC
르네상스의 본고장이자 오랜 문화적 전통을 지닌 이탈리아는 <피노키오>의 작가 카를로 콜로디를 비롯해 브루노 무나리, 잔니 로다리 등 아동문학의 거장들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로베르토 인노첸티, 로렌조 마토티,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처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러스트레이터들 또한 이탈리아 출신이지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매년 봄, 전 세계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의 흐름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전시가 바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입니다. 1967년 시작되어 올해로 59회를 맞은 이 전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도서전인 볼로냐 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매년 새로운 일러스트레이터를 발굴하며 동시대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시해 왔습니다. 2025년에는 89개국 4,374명의 작가가 공모에 참여해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선정된 77명의 일러스트레이터 작품 약 385점이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됩니다. 특히 이번 제59회 전시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14인이 선정되어, 각기 다른 시선과 감성을 지닌 열네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들어낸 다채로운 원화 세계를 선보입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은 1964년 첫 개최 이후 6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국제 박람회로, 출판 거래를 넘어 어린이 문학과 예술을 중심으로 다문화, 환경, 젠더 감수성 등 오늘날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교육적·사회적 가치를 논의하는 장으로 자리해 왔습니다.
이 도서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름이 바로 라가치상(Ragazzi Award)입니다. 1966년 제정된 이 상은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출간된 그림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는, 아동도서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픽션, 논픽션, 오페라 프리마, 토들러, 코믹스, 뉴 호라이즌 등 여러 부문을 통해 이야기의 힘은 물론 디자인과 편집, 예술적·기술적 완성도, 교육적 가치까지 종합적으로 살핍니다.
특히 2025년에는 유엔의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반영한 지속가능성 특별 부문이 신설되어, 그림책이 사회와 세계를 향해 던질 수 있는 질문과 가능성에 더욱 주목합니다. 이처럼 <볼로냐 아동도서전>과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라가치상>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202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의 키워드는 ‘움직임, 창조, 행동’입니다.
이탈리아 볼로냐
이탈리아 볼로냐는 화려하다기보다는 깊이가 느껴지는 도시입니다.
볼로냐를 떠올릴 때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도시 전역을 잇는 아치형 회랑, 포르티코(portico)일 것입니다. 비를 피하고 강한 햇빛을 누그러뜨리며, 사람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이 회랑 아래를 걷다 보면 볼로냐가 얼마나 오랫동안 ‘보행자’를 중심에 두고 만들어져 온 도시인지 체감하게 됩니다. 구시가지에서 산 루카 사원까지 이어지는 40킬로미터가 넘는 회랑은 666개의 아치를 품은 세계에서 가장 긴 포르티코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늘어나는 대학생과 이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덧붙여졌던 구조물은, 오늘날 사람과 도시를 잇는 볼로냐의 상징적인 풍경이 되었습니다.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주도인 볼로냐는 농업과 상공업, 첨단 산업이 균형 있게 발달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고소득 도시이기도 합니다.
‘뚱보의 도시’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풍성한 식문화 역시 볼로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볼로네제’로 알려진 미트 소스부터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잠포네, 세계 최고 수준의 젤라또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에서 ‘먹는 일’은 넉넉한 시간과 함께 나누는 하나의 문화이자 공동체의 언어입니다.
1088년에 설립된 볼로냐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단테와 코페르니쿠스, 움베르토 에코,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볼로냐는 사유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길러낸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중세 시대 200개가 넘는 탑이 솟아 있던 볼로냐에는 지금도 아시넬리 탑과 가리센다 탑이 남아 도시의 기억을 조용히 지탱합니다. 건축과 음식, 학문과 일상이 균형을 이루며 하나의 도시 언어를 만들어온 이 토양 위에서, 볼로냐 아동도서전과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 태어났습니다.
읽기는 공감을 연습하는 일이다.
Reading is an exercise in empathy.
- 말로리 블랙먼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레이션상 2024 수상. 엔히키 코제르 모레이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레이션상 2024 수상자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26세의 브라질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엔히키 코제르 모레이(Henrique Kozer Morey)입니다. 그는 글 없이 이미지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림책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작업해 왔습니다.
이 상은 신진 일러스트레이터의 재능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일러스트 원화전 수상자 가운데 35세 미만의 작가에게 수여되며, 스페인 출판사 SM을 통한 그림책 출간 지원이 함께 제공됩니다.
1998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엔히키 코제르 모레이의 첫 그림책은 <다시, 밖으로>입니다. 글이 전혀 없는 이 책은 코로나 이후 오랜 실내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바깥으로 나서는 ‘첫날의 설렘’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주로 어린이 그림책을 작업하는 그는 단순한 선과 절제된 움직임이 돋보이는 미니멀한 스타일로 감정과 풍경을 표현합니다. 그의 작업은 강한 시각적 서사를 지니면서도 일상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어린이뿐 아니라 전 연령의 독자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림책의 축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59th>


하지야르 모라디 Hajar Moradi, 이란, <용의 나라>, 아크릴 물감
이스파한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란의 작가 하지야르 모라디는 15년 넘게 시와 신화,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감정의 내면 세계를 탐구해 왔습니다. <용의 나라>의 주인공과 그녀의 충직한 말 ‘코모’는 드라큘라의 마법으로 언어가 사라진, 모든 말이 침묵으로 바뀐 도시에 갇히게 됩니다. 목소리를 잃은 이 세계에서 코모는 동화의 나라를 향해 여정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치유와 변화를 이끄는 말과 시의 마법 같은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그림 속에서 코모의 몸짓과 표정을 찬찬히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요?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초현실주의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엉뚱한 조합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하지야르 모라디는 때로 코모를 과장된 크기로 그리거나, 어떤 장면에서는 그의 몸속에 하나의 동네를 품게 합니다.
네 컷의 그림은 각각 다른 서사를 품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이어 보고 싶어집니다.
그림을 따라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혹시 무섭다고 말하던가요, 아니면 슬프거나 이상하다고 느끼던가요?
그 반응 하나하나가 그림이 열어준 또 다른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이미지는 문자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경험을 전달하는 시각적 언어입니다. 그림책 속의 그림은 이야기를 단순히 보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세계를 확장하며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특히 그림책은 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문학이자 시각 예술로서 정서 발달에 깊이 관여합니다. 작가들은 두려움과 외로움, 불안과 부끄러움처럼 아이들이 처음 마주하는 감정을 어루만지는 한편, 인간관계의 복잡함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를 통해 어른들 역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는 <판타지아(Fantasia)>에서 상상력을 무작정 예찬하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훈련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설명합니다.
속도와 기계, 움직임에 관심을 두고 시각적 실험과 타이포그래피를 탐구했던 그는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남성 중심적 영웅주의와 과시적인 표현, 정치적 파시즘의 경향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과잉된 감정과 표현에 대한 그의 경계는 상상력을 보다 차분하고 열린 방향으로 이끕니다.
창조력이란 무엇일까요? 판타지아는 정말 아무런 규칙도 없는 상태일까요? 발명은 판타지아라 부를 수 있을까요, 혹은 판타지아가 발명이 될 수 있을까요? 판타지아는 상상력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요? 거짓말 또한 판타지아일까요?
이 모든 질문은 브루노 무나리가 <판타지아>에서 던진 물음들입니다. 무나리는 모호하고 제멋대로이며 비논리적이고 신비로운 영역으로 여겨져 온 예술적·창조적 판타지아를 하나씩 분리해 살펴봅니다. 그는 판타지아를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 남겨두기보다, 이해하고 연습할 수 있는 사고의 방식으로 끌어옵니다.
현대의 동시대 작가들 가운데 전위에 속해 있으면서도 낭만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예술가 부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예술이란 해설 불가능한 신비한 것이기 때문에 대중은 어디까지나 예술의 문제 바깥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이 규칙이 깨지면 예술의 지위는 나락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본다. 누구나 예술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예술은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브루노 무나리, 「판타지아」, p.22”
무나리에 따르면 판타지아(Fantasia)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겉보기에는 비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판타지아는 상상이나 발명과 마찬가지로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생각해 온 것들을 서로 연관 짓는 과정에서 출발합니다.
상상은 생각을 시각화하며 사고를 확장합니다. 상상력(Immaginazione, imagination)은 이미 존재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이미지로 그려내는 능력입니다. 이때 연관 짓기의 폭이 넓을수록 판타지아는 더욱 풍부해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 손에 쥔 사물들,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 모두가 그 재료가 됩니다.
창의성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가깝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과 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많은 것이 형성되는 어린 시기에는 재료를 만지고, 손으로 사고하며 실험하는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무나리는 이를 ‘손으로 생각하기’라고 부릅니다.
판타지아의 첫걸음은 상황을 뒤집고, 서로 상반되거나 정반대의 요소를 결합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익숙한 질서를 잠시 흔드는 그 순간, 생각은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알레시오 알치니Alessio Alcini, 이탈리아, <풍성한 점심 식사> (이미지 제공. (주)CCOC)
이 작품은 이번에 선정된 이탈리아 출신 작가 14인 중 하나인 알레시오 알치니의 풍성한 점심식사(Pranzo abbondante)입니다. 알레시오 알치니는 이탈리아 아브루초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과 생태계의 다양성 이야기를 그린 <멸종 백과>와 우주 토끼들의 모험 이야기를 그린 <우주 토끼>가 있습니다.
이번에 이 작품이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전시를 보던 중 한 아이의 질문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 앞에 서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럼 저 토끼들은 스파게티가 되는 거예요?”라고 묻는 순간, 저는 무심코 지나쳤던 이 그림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요. 사실 이 작품은 처음엔 제게 그리 감응을 주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온갖 호기심으로 그림을 들여다보던 아이의 눈빛은 이 그림 속에서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있었을 겁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아이들의 대화를 조금 더 듣고 싶어졌지만 각자의 길로...인솔하던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그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기에 이런 질문이 나왔을까. 그 궁금증을 남긴 채로 말이죠.
환상(fantastic)의 어원은 그리스어 phantastikos에서 비롯되며, 이는 ‘보이게 하다’, ‘마음속에 형상을 그리다’를 뜻하는 phainein에서 나왔습니다. 본래 환상이란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 속에서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리켰어요. 그래서 fantastic은 처음부터 ‘멋지다’보다는 ‘현실과 어긋난 것’, ‘비현실적인 것’, ‘상상의 산물’에 더 가까운 의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의 표현으로 쓰는 “fantastic!”은 훨씬 뒤에 덧붙여진 의미입니다.
환상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흔들리는 순간에 태어납니다.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망설이게 만드는 상태에서 우리는 환상(fantastic)을 경험하게 됩니다. 현실의 논리를 살짝 비틀 때 만들어지는 환상의 감각은 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죠.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며, 이것이 현실인지 초자연적인 사건인지 단정할 수 없는 찰나. ‘이게 뭐지?’ 싶은 순간에 환상은 자리합니다.
그런 감각은 닫혀 있던 세계의 문을 열어,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어 줍니다.
식탁 위 포크보다도 작은 일곱 마리의 우주 토끼는 토마토 스파게티 접시 위에 모여 앉아 파스타 면을 한 가닥씩 먹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토끼의 귀에는 주황색 구슬이 달려 있고, 등에는 산소통처럼 보이는 물건이 얹혀 있군요. 배낭인가요? 눈을 찌푸리며 귀를 막고 있는 토끼도 보이는데, 도대체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일까요..
“그럼 저 토끼들은 스파게티가 되는 거예요?”라고 묻던 아이의 질문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기무라 유미 Yumi Kimura, 일본, <세상의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 수채화, 콜라주, 디지털 작업
일본 작가 기무라 유미는 물과 물감이 어우러지는 우연의 순간을 포착한 수채화 작업을 즐겨합니다. 다양한 동물을 모티프로 삼고, 그림에 짧은 문구를 곁들이는 것이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요소인데요. 수채화 일러스트 특유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불투명 수채화인 과슈와 달리 수채화는 맑고 투명한 색감이 특징입니다. 종이의 재질에 따라 물을 머금은 원색의 물감이 번져 나가는 속도는 매순간 달라지고, 바로 그 차이에서 수채화의 아름다움이 태어납니다. 물감의 농도가 낮아 번짐이 멈춘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형상들은, 의도와 우연이 만나는 지점을 섬세하게 보여주죠.
이번 출품작 〈세상의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는 인간의 마을 건설로 서식지를 빼앗긴 야생동물들의 갈등을 다룹니다. 작가는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가 균형 속에서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환경은 예술가에게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특히 일러스트레션은 근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자연 과학의 발달로 인해 자연 현상과 동물을 묘사하면서 발전했습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을 많이 그렸죠.

마르그리트 홀스타인 Marguerite Holstein, 프랑스, <할머니들의 휴가>, 과슈, 수용성 왁스 파스텔, 흑연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홀스타인은 현재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망한 그림책 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과슈(불투명 수채화)와 수용성 왁스 파스텔을 사용해 그려졌습니다. 종이에 그려지는 그림책 일러스트에서는 수채화, 과슈, 아크릴이 주된 재료로 활용되는데, 바로 위에 보여드린 수채화 작업과 지금 이 그림에 사용된 과슈의 느낌이 다르지요? 수채화와 과슈 중 어떤 재료로 그려진 느낌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학교 과제로 제작한 〈할머니들의 휴가〉는 작가의 할머니에게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입니다. 휴가에 누구보다 진심인 세 친구가 비 오는 날, 휴가지에서 벌이는 유쾌한 하루를 그리고 있지요.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강단 있게 살아가는 노년 여성들의 멋진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벤자민 필립스Benjamin Phillips, 영국, <다리 긴 남자>, 목탄, 흑연, 잉크, 디지털 작업 (이미지 제공. (주)CCOC)
영국 작가 벤자민 필립스는 2024년 V&A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를 비롯한 주요 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온 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유난히 긴 다리 때문에 타인의 시선과 차별 속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에 큰 홍수가 닥치면서, 그가 오랫동안 결핍처럼 여겨 왔던 다리는 이웃을 구하는 결정적인 힘으로 바뀝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다름’이 어떻게 공동체를 살리는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따뜻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보고서전에 따르면,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대체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업에 더 큰 매력을 느끼며 기술적 완성도를 엄격하게 평가한 반면, 출판인들은 서사적 요소를 우선시했고 스타일이나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고 하는데요. 이 지점은 일러스트레이터와 출판인 사이의 익숙한 간극으로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어 온, 쉽게 해소되지 않는 오래된 딜레마입니다.



파울리나 라우Paulina Rauh, 독일, <어울리지 않는 것들>, 디지털 작업
파울리나 라우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엉뚱한 순간들을 포착하는 데 능숙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제목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이미지를 대비시켜 유머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독일에서 글 없는 그림책(Silent Book)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큰 사고가 날 것처럼 보이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은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며,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유머 감각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 표지
코끼리와 골동품 도자기
자전거 타는 사람과 압정
신문을 읽는 남자와 가로등
맨발과 레고 브릭

로시오 카츠 Rocío Katz, 아르헨티나, <깊은 잠수>, 혼합재료
로시오 카츠(Rocío Katz)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음악가로, 이미지와 소리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입니다. 그의 작업은 자연과 물, 몸의 감각, 내면의 풍경을 다루며, 감정과 상태를 조용히 환기시키는 데 초점을 둡니다. 〈깊은 잠수〉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물’을 주제로 한 오라클 카드 제작 프로젝트의 일부로 탄생했습니다.
그림에서는 분명한 선의 드로잉과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채가 어우러져 절제된 몸짓을 담아냅니다. 마치 춤을 추듯 이어지는 오른팔의 각진 곡선과 손목, 같은 방향으로 발끝까지 흐르는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젖은 발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과 바닥에 고인 물마저 하나의 선율처럼 연결되며, 과장되지 않은 느릿한 춤사위가 시선을 붙잡습니다. 카츠의 작업에는 ‘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의 그림은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보는 이가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투영하며 평온하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듣기
숨쉬기
기다리기
함께하기
그리고 다시 시작

코이케 유이 Yui Koike, 일본, <여기에 있습니다>, 메조틴트
코이케 유이는 광고, 서적, 잡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상의 평온한 순간과 소소한 사물들을 절제된 미니멀리즘과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그려냅니다. <여기에 있습니다>에서는 메조틴트 판화 기법 특유의 은은한 명암을 활용해, 자연이 지닌 고요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메조틴트(Mezzotint)는 ‘중간 톤으로 색을 낸다’는 뜻을 지닌 판화 기법으로, 빛과 어둠의 표현에 특히 뛰어난 방식입니다. 어두운 화면에서 빛이 서서히 떠오르는 듯한 효과와, 깊고 부드러운 농담은 화면에 회화적인 인상을 더합니다. 독일어로는 ‘긁어내는 예술’을 뜻하는 Schabkunst라 불리며, 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죠. 제작 과정 또한 매우 노동집약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느리고 조용한 작업 방식입니다.

양효주, 대한민국, <야만인>, 흑연, 연필
양효주 작가는 SI그림책학교에서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을 공부하였으며, 연필과 볼펜을 사용해 자유로운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그림은 조용한 화면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모순을 탐구함니다.
출품작 <야만인(Barbarian)>은 더미북으로 이후 <Clow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본 작품은 진정한 자아를 깨달은 후에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서커스 호랑이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정체성과 자기기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으며 독자에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2025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도록 표지. 시드니 스미스 Sydney Smith
이번 2025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도록 표지는 202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캐나다 작가 시드니 스미스의 작품입니다.
이 표지 그림은 시드니 스미스가 어린 시절,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잊고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무언가에 닿았다고 느꼈던 ‘아름답고 숭고한 순간’을 떠올리며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는 이를 통해 ‘창작 행위’와 ‘창작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그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조던 스콧(Jordan Scott)이 글을 쓰고 시드니 스미스(Sydney Smith)가 그림을 그린 작품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I Talk Like a River)>를 추천합니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말을 더듬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강가를 산책하며, 남들과 다른 자신의 ‘말하기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말더듬으로 인해 겪었던 고통과 불안을 마주하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배워 나갑니다. 아버지는 강물을 바라보며 소년에게 “바로 너도 강물처럼 말하는 거란다”라고 말합니다.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부드럽게 흘러가기도 하는 강물의 모습을 통해, 소년은 자신의 말하기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술의전당 전시장 그림 앞에 잠시 머물러 아이와 함께 질문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길 권합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59th 굿즈


유료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 중
시간 : 토, 일요일 11:00 / 14:00
도슨트 프로그램 티켓가 : 16,000원


이미지 출처.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예술의전당 음악당 1F에 <카페드샬롯(Cafe de Charlotte)>이 있습니다.
영업시간
음악당 공연 시작 2시간 전~인터미션까지
브레이크타임
15:00~17:00

[지하철]
2호선
서초역 3번 출구
마을버스 11번(초록색)을 타고 네 정거장 이동
도보이동(약 20~25분 소요)
3호선
남부터미널역 5번 출구.
도보이동(약 5~10분 소요)
마을버스 22번(초록색)을 타고 두 정거장 이동
4호선
사당역 1번 출구
마을버스 17번(초록색)을 타고 16개 정거장 이동
[버스]
406, 405, 5413, 1500-2, 1553
마을버스 서초11, 서초17, 서초22
[승용차]
예술의전당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우 06757)
에디터 탁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전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59회>전이 2025년 12월 27일(토)~2026. 3월 28일(토)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77명이 그린 약 385점의 원화 작품과 이탈리아 수상 작가 14인 특별전 등 다채로운 작품이 전시됩니다.
예술의전당 (출처.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1988년 음악당과 서울서예박물관의 개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예술의전당은, 1990년 한가람미술관과 예술자료관, 1993년 오페라하우스가 차례로 완공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문화예술 창달’,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설립 목적 아래, 7개의 공연장과 3개의 미술관·박물관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은 국가 차원에서 ‘예술을 위한 종합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구현한 첫 사례로, 단순한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넘어 한국 현대 문화정책과 예술 제도의 흐름을 담아낸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일대에 자리한 예술의전당은 1984년 착공해 1988년 문을 열었으며, 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시대적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개관 당시 명칭은 ‘서울예술의전당’이었습니다.
예술의전당을 이루는 건축과 공간 역시 이러한 상징성을 품고 있습니다.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은 한국 전통 건축의 처마 곡선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을 지니고 있고, 단일 건물이 아닌 여러 전문 공간이 모여 하나의 ‘문화 캠퍼스’를 이루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오페라와 발레가 열리는 오페라하우스,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는 음악당, 연극극장과 자유소극장, 한가람미술관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야외광장과 서예관까지—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점은 예술의전당이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예술의전당은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등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 창작을 지원해 왔으며, 해외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 초청, 대규모 기획전과 국제 전시 유치를 통해 국내외 예술 교류의 장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더불어 예술 교육 프로그램과 아카이브를 통해 예술의 생산과 유통, 향유가 한 장소 안에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한편 개관 초기에는 ‘엘리트 중심의 예술 공간’, ‘도심과 다소 떨어진 위치’, ‘생활문화와의 거리감’이라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당시 남부터미널 일대는 도심 외곽에 가까웠고, 1990년대 이후 대안공간과 독립예술이 활성화되면서 예술의전당은 제도권 예술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의전당은 대중 친화적인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야외 및 무료 공연을 늘리며, 디자인·사진·미디어 전시와 젊은 관객을 위한 기획을 통해 점차 그 스펙트럼을 넓혀오고 있습니다.
한가람미술관(출처.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1990년에 문을 연 한가람미술관은 2003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6개의 전시장과 수장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실을 바탕으로, 해외 명화와 거장 중심의 전시를 통해 미술을 ‘교육’이자 ‘문화 교양’으로 소개해 온 한가람미술관은 매년 고대문명을 소개하는 전시회부터 현대 미술까지 평균 50여 건이 넘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하여 주최한 주요 전시는 <반 아파르트헤이트전>, <유럽공동체신진작가전>, <칸딘스키와 아방가르드전>, <고대 이집트 문명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전>, <램브란트판화전>,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전>, <오르세미술관 한국특별전>,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쿠사마 야요이전>, <페르난도 보테로전>, <니키 드 생팔전> 등이 있습니다.
이미지 제공. (주)CCOC
르네상스의 본고장이자 오랜 문화적 전통을 지닌 이탈리아는 <피노키오>의 작가 카를로 콜로디를 비롯해 브루노 무나리, 잔니 로다리 등 아동문학의 거장들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로베르토 인노첸티, 로렌조 마토티,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처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러스트레이터들 또한 이탈리아 출신이지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매년 봄, 전 세계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의 흐름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전시가 바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입니다. 1967년 시작되어 올해로 59회를 맞은 이 전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도서전인 볼로냐 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매년 새로운 일러스트레이터를 발굴하며 동시대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시해 왔습니다. 2025년에는 89개국 4,374명의 작가가 공모에 참여해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선정된 77명의 일러스트레이터 작품 약 385점이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됩니다. 특히 이번 제59회 전시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14인이 선정되어, 각기 다른 시선과 감성을 지닌 열네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들어낸 다채로운 원화 세계를 선보입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은 1964년 첫 개최 이후 6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국제 박람회로, 출판 거래를 넘어 어린이 문학과 예술을 중심으로 다문화, 환경, 젠더 감수성 등 오늘날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교육적·사회적 가치를 논의하는 장으로 자리해 왔습니다.
이 도서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름이 바로 라가치상(Ragazzi Award)입니다. 1966년 제정된 이 상은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출간된 그림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는, 아동도서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픽션, 논픽션, 오페라 프리마, 토들러, 코믹스, 뉴 호라이즌 등 여러 부문을 통해 이야기의 힘은 물론 디자인과 편집, 예술적·기술적 완성도, 교육적 가치까지 종합적으로 살핍니다.
특히 2025년에는 유엔의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반영한 지속가능성 특별 부문이 신설되어, 그림책이 사회와 세계를 향해 던질 수 있는 질문과 가능성에 더욱 주목합니다. 이처럼 <볼로냐 아동도서전>과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라가치상>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202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의 키워드는 ‘움직임, 창조, 행동’입니다.
이탈리아 볼로냐
이탈리아 볼로냐는 화려하다기보다는 깊이가 느껴지는 도시입니다.
볼로냐를 떠올릴 때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도시 전역을 잇는 아치형 회랑, 포르티코(portico)일 것입니다. 비를 피하고 강한 햇빛을 누그러뜨리며, 사람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이 회랑 아래를 걷다 보면 볼로냐가 얼마나 오랫동안 ‘보행자’를 중심에 두고 만들어져 온 도시인지 체감하게 됩니다. 구시가지에서 산 루카 사원까지 이어지는 40킬로미터가 넘는 회랑은 666개의 아치를 품은 세계에서 가장 긴 포르티코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늘어나는 대학생과 이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덧붙여졌던 구조물은, 오늘날 사람과 도시를 잇는 볼로냐의 상징적인 풍경이 되었습니다.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주도인 볼로냐는 농업과 상공업, 첨단 산업이 균형 있게 발달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고소득 도시이기도 합니다.
‘뚱보의 도시’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풍성한 식문화 역시 볼로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볼로네제’로 알려진 미트 소스부터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잠포네, 세계 최고 수준의 젤라또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에서 ‘먹는 일’은 넉넉한 시간과 함께 나누는 하나의 문화이자 공동체의 언어입니다.
1088년에 설립된 볼로냐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단테와 코페르니쿠스, 움베르토 에코,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볼로냐는 사유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길러낸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중세 시대 200개가 넘는 탑이 솟아 있던 볼로냐에는 지금도 아시넬리 탑과 가리센다 탑이 남아 도시의 기억을 조용히 지탱합니다. 건축과 음식, 학문과 일상이 균형을 이루며 하나의 도시 언어를 만들어온 이 토양 위에서, 볼로냐 아동도서전과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 태어났습니다.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레이션상 2024 수상. 엔히키 코제르 모레이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레이션상 2024 수상자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26세의 브라질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엔히키 코제르 모레이(Henrique Kozer Morey)입니다. 그는 글 없이 이미지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림책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작업해 왔습니다.
이 상은 신진 일러스트레이터의 재능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일러스트 원화전 수상자 가운데 35세 미만의 작가에게 수여되며, 스페인 출판사 SM을 통한 그림책 출간 지원이 함께 제공됩니다.
1998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엔히키 코제르 모레이의 첫 그림책은 <다시, 밖으로>입니다. 글이 전혀 없는 이 책은 코로나 이후 오랜 실내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바깥으로 나서는 ‘첫날의 설렘’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주로 어린이 그림책을 작업하는 그는 단순한 선과 절제된 움직임이 돋보이는 미니멀한 스타일로 감정과 풍경을 표현합니다. 그의 작업은 강한 시각적 서사를 지니면서도 일상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어린이뿐 아니라 전 연령의 독자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림책의 축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59th>
하지야르 모라디 Hajar Moradi, 이란, <용의 나라>, 아크릴 물감
이스파한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란의 작가 하지야르 모라디는 15년 넘게 시와 신화,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감정의 내면 세계를 탐구해 왔습니다. <용의 나라>의 주인공과 그녀의 충직한 말 ‘코모’는 드라큘라의 마법으로 언어가 사라진, 모든 말이 침묵으로 바뀐 도시에 갇히게 됩니다. 목소리를 잃은 이 세계에서 코모는 동화의 나라를 향해 여정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치유와 변화를 이끄는 말과 시의 마법 같은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그림 속에서 코모의 몸짓과 표정을 찬찬히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요?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초현실주의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엉뚱한 조합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하지야르 모라디는 때로 코모를 과장된 크기로 그리거나, 어떤 장면에서는 그의 몸속에 하나의 동네를 품게 합니다.
네 컷의 그림은 각각 다른 서사를 품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이어 보고 싶어집니다.
그림을 따라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혹시 무섭다고 말하던가요, 아니면 슬프거나 이상하다고 느끼던가요?
그 반응 하나하나가 그림이 열어준 또 다른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이미지는 문자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경험을 전달하는 시각적 언어입니다. 그림책 속의 그림은 이야기를 단순히 보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세계를 확장하며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특히 그림책은 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문학이자 시각 예술로서 정서 발달에 깊이 관여합니다. 작가들은 두려움과 외로움, 불안과 부끄러움처럼 아이들이 처음 마주하는 감정을 어루만지는 한편, 인간관계의 복잡함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를 통해 어른들 역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는 <판타지아(Fantasia)>에서 상상력을 무작정 예찬하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훈련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설명합니다.
속도와 기계, 움직임에 관심을 두고 시각적 실험과 타이포그래피를 탐구했던 그는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남성 중심적 영웅주의와 과시적인 표현, 정치적 파시즘의 경향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과잉된 감정과 표현에 대한 그의 경계는 상상력을 보다 차분하고 열린 방향으로 이끕니다.
창조력이란 무엇일까요? 판타지아는 정말 아무런 규칙도 없는 상태일까요? 발명은 판타지아라 부를 수 있을까요, 혹은 판타지아가 발명이 될 수 있을까요? 판타지아는 상상력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요? 거짓말 또한 판타지아일까요?
이 모든 질문은 브루노 무나리가 <판타지아>에서 던진 물음들입니다. 무나리는 모호하고 제멋대로이며 비논리적이고 신비로운 영역으로 여겨져 온 예술적·창조적 판타지아를 하나씩 분리해 살펴봅니다. 그는 판타지아를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 남겨두기보다, 이해하고 연습할 수 있는 사고의 방식으로 끌어옵니다.
무나리에 따르면 판타지아(Fantasia)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겉보기에는 비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판타지아는 상상이나 발명과 마찬가지로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생각해 온 것들을 서로 연관 짓는 과정에서 출발합니다.
상상은 생각을 시각화하며 사고를 확장합니다. 상상력(Immaginazione, imagination)은 이미 존재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이미지로 그려내는 능력입니다. 이때 연관 짓기의 폭이 넓을수록 판타지아는 더욱 풍부해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 손에 쥔 사물들,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 모두가 그 재료가 됩니다.
창의성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가깝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과 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많은 것이 형성되는 어린 시기에는 재료를 만지고, 손으로 사고하며 실험하는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무나리는 이를 ‘손으로 생각하기’라고 부릅니다.
판타지아의 첫걸음은 상황을 뒤집고, 서로 상반되거나 정반대의 요소를 결합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익숙한 질서를 잠시 흔드는 그 순간, 생각은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알레시오 알치니Alessio Alcini, 이탈리아, <풍성한 점심 식사> (이미지 제공. (주)CCOC)
이 작품은 이번에 선정된 이탈리아 출신 작가 14인 중 하나인 알레시오 알치니의 풍성한 점심식사(Pranzo abbondante)입니다. 알레시오 알치니는 이탈리아 아브루초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과 생태계의 다양성 이야기를 그린 <멸종 백과>와 우주 토끼들의 모험 이야기를 그린 <우주 토끼>가 있습니다.
이번에 이 작품이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전시를 보던 중 한 아이의 질문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 앞에 서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럼 저 토끼들은 스파게티가 되는 거예요?”라고 묻는 순간, 저는 무심코 지나쳤던 이 그림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요. 사실 이 작품은 처음엔 제게 그리 감응을 주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온갖 호기심으로 그림을 들여다보던 아이의 눈빛은 이 그림 속에서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있었을 겁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아이들의 대화를 조금 더 듣고 싶어졌지만 각자의 길로...인솔하던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그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기에 이런 질문이 나왔을까. 그 궁금증을 남긴 채로 말이죠.
환상(fantastic)의 어원은 그리스어 phantastikos에서 비롯되며, 이는 ‘보이게 하다’, ‘마음속에 형상을 그리다’를 뜻하는 phainein에서 나왔습니다. 본래 환상이란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 속에서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리켰어요. 그래서 fantastic은 처음부터 ‘멋지다’보다는 ‘현실과 어긋난 것’, ‘비현실적인 것’, ‘상상의 산물’에 더 가까운 의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의 표현으로 쓰는 “fantastic!”은 훨씬 뒤에 덧붙여진 의미입니다.
환상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흔들리는 순간에 태어납니다.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망설이게 만드는 상태에서 우리는 환상(fantastic)을 경험하게 됩니다. 현실의 논리를 살짝 비틀 때 만들어지는 환상의 감각은 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죠.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며, 이것이 현실인지 초자연적인 사건인지 단정할 수 없는 찰나. ‘이게 뭐지?’ 싶은 순간에 환상은 자리합니다.
그런 감각은 닫혀 있던 세계의 문을 열어,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어 줍니다.
식탁 위 포크보다도 작은 일곱 마리의 우주 토끼는 토마토 스파게티 접시 위에 모여 앉아 파스타 면을 한 가닥씩 먹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토끼의 귀에는 주황색 구슬이 달려 있고, 등에는 산소통처럼 보이는 물건이 얹혀 있군요. 배낭인가요? 눈을 찌푸리며 귀를 막고 있는 토끼도 보이는데, 도대체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일까요..
“그럼 저 토끼들은 스파게티가 되는 거예요?”라고 묻던 아이의 질문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기무라 유미 Yumi Kimura, 일본, <세상의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 수채화, 콜라주, 디지털 작업
일본 작가 기무라 유미는 물과 물감이 어우러지는 우연의 순간을 포착한 수채화 작업을 즐겨합니다. 다양한 동물을 모티프로 삼고, 그림에 짧은 문구를 곁들이는 것이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요소인데요. 수채화 일러스트 특유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불투명 수채화인 과슈와 달리 수채화는 맑고 투명한 색감이 특징입니다. 종이의 재질에 따라 물을 머금은 원색의 물감이 번져 나가는 속도는 매순간 달라지고, 바로 그 차이에서 수채화의 아름다움이 태어납니다. 물감의 농도가 낮아 번짐이 멈춘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형상들은, 의도와 우연이 만나는 지점을 섬세하게 보여주죠.
이번 출품작 〈세상의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는 인간의 마을 건설로 서식지를 빼앗긴 야생동물들의 갈등을 다룹니다. 작가는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가 균형 속에서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환경은 예술가에게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특히 일러스트레션은 근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자연 과학의 발달로 인해 자연 현상과 동물을 묘사하면서 발전했습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을 많이 그렸죠.
마르그리트 홀스타인 Marguerite Holstein, 프랑스, <할머니들의 휴가>, 과슈, 수용성 왁스 파스텔, 흑연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홀스타인은 현재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망한 그림책 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과슈(불투명 수채화)와 수용성 왁스 파스텔을 사용해 그려졌습니다. 종이에 그려지는 그림책 일러스트에서는 수채화, 과슈, 아크릴이 주된 재료로 활용되는데, 바로 위에 보여드린 수채화 작업과 지금 이 그림에 사용된 과슈의 느낌이 다르지요? 수채화와 과슈 중 어떤 재료로 그려진 느낌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학교 과제로 제작한 〈할머니들의 휴가〉는 작가의 할머니에게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입니다. 휴가에 누구보다 진심인 세 친구가 비 오는 날, 휴가지에서 벌이는 유쾌한 하루를 그리고 있지요.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강단 있게 살아가는 노년 여성들의 멋진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벤자민 필립스Benjamin Phillips, 영국, <다리 긴 남자>, 목탄, 흑연, 잉크, 디지털 작업 (이미지 제공. (주)CCOC)
영국 작가 벤자민 필립스는 2024년 V&A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를 비롯한 주요 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온 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유난히 긴 다리 때문에 타인의 시선과 차별 속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에 큰 홍수가 닥치면서, 그가 오랫동안 결핍처럼 여겨 왔던 다리는 이웃을 구하는 결정적인 힘으로 바뀝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다름’이 어떻게 공동체를 살리는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따뜻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보고서전에 따르면,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대체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업에 더 큰 매력을 느끼며 기술적 완성도를 엄격하게 평가한 반면, 출판인들은 서사적 요소를 우선시했고 스타일이나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고 하는데요. 이 지점은 일러스트레이터와 출판인 사이의 익숙한 간극으로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어 온, 쉽게 해소되지 않는 오래된 딜레마입니다.
파울리나 라우Paulina Rauh, 독일, <어울리지 않는 것들>, 디지털 작업
파울리나 라우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엉뚱한 순간들을 포착하는 데 능숙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제목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이미지를 대비시켜 유머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독일에서 글 없는 그림책(Silent Book)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큰 사고가 날 것처럼 보이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은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며,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유머 감각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 표지
코끼리와 골동품 도자기
자전거 타는 사람과 압정
신문을 읽는 남자와 가로등
맨발과 레고 브릭
로시오 카츠 Rocío Katz, 아르헨티나, <깊은 잠수>, 혼합재료
로시오 카츠(Rocío Katz)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음악가로, 이미지와 소리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입니다. 그의 작업은 자연과 물, 몸의 감각, 내면의 풍경을 다루며, 감정과 상태를 조용히 환기시키는 데 초점을 둡니다. 〈깊은 잠수〉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물’을 주제로 한 오라클 카드 제작 프로젝트의 일부로 탄생했습니다.
그림에서는 분명한 선의 드로잉과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채가 어우러져 절제된 몸짓을 담아냅니다. 마치 춤을 추듯 이어지는 오른팔의 각진 곡선과 손목, 같은 방향으로 발끝까지 흐르는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젖은 발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과 바닥에 고인 물마저 하나의 선율처럼 연결되며, 과장되지 않은 느릿한 춤사위가 시선을 붙잡습니다. 카츠의 작업에는 ‘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의 그림은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보는 이가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투영하며 평온하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듣기
숨쉬기
기다리기
함께하기
그리고 다시 시작
코이케 유이 Yui Koike, 일본, <여기에 있습니다>, 메조틴트
코이케 유이는 광고, 서적, 잡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상의 평온한 순간과 소소한 사물들을 절제된 미니멀리즘과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그려냅니다. <여기에 있습니다>에서는 메조틴트 판화 기법 특유의 은은한 명암을 활용해, 자연이 지닌 고요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메조틴트(Mezzotint)는 ‘중간 톤으로 색을 낸다’는 뜻을 지닌 판화 기법으로, 빛과 어둠의 표현에 특히 뛰어난 방식입니다. 어두운 화면에서 빛이 서서히 떠오르는 듯한 효과와, 깊고 부드러운 농담은 화면에 회화적인 인상을 더합니다. 독일어로는 ‘긁어내는 예술’을 뜻하는 Schabkunst라 불리며, 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죠. 제작 과정 또한 매우 노동집약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느리고 조용한 작업 방식입니다.
양효주, 대한민국, <야만인>, 흑연, 연필
양효주 작가는 SI그림책학교에서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을 공부하였으며, 연필과 볼펜을 사용해 자유로운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그림은 조용한 화면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모순을 탐구함니다.
출품작 <야만인(Barbarian)>은 더미북으로 이후 <Clow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본 작품은 진정한 자아를 깨달은 후에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서커스 호랑이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정체성과 자기기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으며 독자에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2025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도록 표지. 시드니 스미스 Sydney Smith
이번 2025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도록 표지는 202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캐나다 작가 시드니 스미스의 작품입니다.
이 표지 그림은 시드니 스미스가 어린 시절,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잊고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무언가에 닿았다고 느꼈던 ‘아름답고 숭고한 순간’을 떠올리며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는 이를 통해 ‘창작 행위’와 ‘창작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그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조던 스콧(Jordan Scott)이 글을 쓰고 시드니 스미스(Sydney Smith)가 그림을 그린 작품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I Talk Like a River)>를 추천합니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말을 더듬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강가를 산책하며, 남들과 다른 자신의 ‘말하기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말더듬으로 인해 겪었던 고통과 불안을 마주하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배워 나갑니다. 아버지는 강물을 바라보며 소년에게 “바로 너도 강물처럼 말하는 거란다”라고 말합니다.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부드럽게 흘러가기도 하는 강물의 모습을 통해, 소년은 자신의 말하기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술의전당 전시장 그림 앞에 잠시 머물러 아이와 함께 질문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길 권합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59th 굿즈
유료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 중
시간 : 토, 일요일 11:00 / 14:00
도슨트 프로그램 티켓가 : 16,000원
이미지 출처.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예술의전당 음악당 1F에 <카페드샬롯(Cafe de Charlotte)>이 있습니다.
영업시간
음악당 공연 시작 2시간 전~인터미션까지
브레이크타임
15:00~17:00
[지하철]
2호선
서초역 3번 출구
마을버스 11번(초록색)을 타고 네 정거장 이동
도보이동(약 20~25분 소요)
3호선
남부터미널역 5번 출구.
도보이동(약 5~10분 소요)
마을버스 22번(초록색)을 타고 두 정거장 이동
4호선
사당역 1번 출구
마을버스 17번(초록색)을 타고 16개 정거장 이동
[버스]
406, 405, 5413, 1500-2, 1553
마을버스 서초11, 서초17, 서초22
[승용차]
예술의전당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우 06757)
에디터 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