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내비게이션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 1층에 위치한 극장, MMCA 영상관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MMCA 필름앤비디오는 2025년 11월 26일부터 2025년 1월 10일까지 <이중시선>을 선보입니다.
올해 마지막 프로그램인 <이중시선>은 12편의 영화를 6쌍으로 묶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거나 해석되도록 구성해,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다른 시대와 장르를 지닌 12편의 영화를 통해, 당대에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던 작품들을 다시 조명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OTT, 유튜브 등 동시대 미디어 환경에서 범람하는 영상들, 멀티플렉스 극장의 재상영작, 고전 영화 목록에 포함되지 않아 잊힌 듯 취급되어 온 작품들을 서로 짝지어 제시함으로써,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다시 생각해보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이중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도록 유도합니다. 김기영, 할 애쉬비, 르네 비에네, 스티브 오데커크, 알프레드 히치콕 등 국내외 12명의 감독과 그들의 작품이 선정되었습니다.
총 6개의 프로그램으로 2편씩 12편의 영화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1978) | 김기영
해롤드와 모드(Harold and Maude, 1971) | 할 애쉬비(Hal Ashby)
2.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 1973) | 르네 비에네(René Viénet)
퓨전 쿵푸 | 스티브 오데커크(Steve Oedekerk)
3.
싸이코(Psycho, 1960) |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싸이코(Psycho, 1998) |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4.
버든 오브 드림즈(Burden of Dreams, 1982) | 레슬리 클리프(Les Blank)
카메라를 든 사람(Man with a Movie Camera, 1929) |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
5.
우리 모두의 나치(Our Nazi, 1984) | 로버트 크레이머(Robert Kramer)
Z32(2008) | 아비 모그라비(Avi Mograbi)
6.
넘버3(1997) | 송능한
품행제로(2002) | 정윤철
개막작인 김기영 감독의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와 할 애쉬비 감독의 <해롤드와 모드>는 죽음을 향한 욕망을 다루며 기존 질서와 규범의 전복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공유합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르네 비에네의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와 스티브 오데커크의 <퓨전 쿵푸>를 통해 아시아 무술 영화를 새로운 사유의 장으로 확장해 봅니다.
세 번째 프로그램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 <싸이코>와, 38년 후 이를 동일하게 재촬영하려 했던 구스 반 산트의 <싸이코>를 함께 상영합니다.
네 번째 섹션에서는 <버든 오브 드림즈>와 <카메라를 든 사람>을 통해 영화 제작 현장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 모두의 나치>와 <Z32>는 영화를 통한 재현의 윤리적 불안정성을 탐구합니다.
마지막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영화 <넘버3>와 <품행제로>를 상영해, 하이틴 복고 열풍과 조폭 영화 성공 신화가 시작된 임계점을 조명하며 한국 대중영화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시대 감수성을 열어갔는지 보여줍니다.


김기영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출처, 유튜브
영화를 종종 ‘유령(ghost)’에 비유하곤 합니다. 영화관 역시 유령이 소환되는 어둠 속의 장소, 곧 ‘유령의 공간’이라고 불리지요. 그 이유는 여러 의미를 품고 있겠지만, 영화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들고, 사라진 것을 다시 불러들이는 예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두운 극장 안,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어떤 공간과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를 마주하고, 그 세계 속으로 깊이 몰입합니다. 영화는 하나의 현실을 스크린 위에 잠시 소환하고, 관객은 그것을 바라보며 다른 현실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 극장 밖으로 나서는 순간, 우리는 다시 또 다른 현실을 살아가게 되지요. 아마도 이렇게 존재하지 않던 것들을 눈앞에 불러오고, 실체 없는 이미지로 세계를 만들어내는 점이 유령의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에, 영화를 ‘유령’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이유에 대해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관객들에게 다층적인 서사와 미장센을 갖춘 확장된 영화 세계를 선사하기 위한 시도”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술관은 이번 <이중시선>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와 미술의 경계 지점을 새롭게 보여주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MMCA 필름앤비디오 <이중시선>이 제안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짝지어진 두 영화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가로지르는지 천천히 체감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섯 개의 프로그램 중 첫 번째 프로그램에 포함된 김기영 감독의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1978)와, 세 번째 프로그램의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 작품인 <사이코>(Psycho, 1960)를 소개합니다.
1.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김기영 | 한국 | 1978 | 110분 | DCP | 컬러


김기영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출처, 유튜브
김기영(1919–1998) 감독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한국영화사에서 김기영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으로 ‘기괴한 기인’으로 기억되는 감독입니다. <하녀>, <화녀>, <충녀> 등 인간의 욕망과 근원적 충동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들로 유명하며, 시나리오부터 미술·소품까지 모두 직접 제작할 정도로 영화적 세계를 철저히 스스로 구축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오래전에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 감독으로 김기영을 꼽은 바 있으며, 전문가들 역시 그의 영화를 대중성과 시대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1978년작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는 평가가 엇갈리는 작품이지만, 오히려 김기영이 천착해온 주제—삶과 죽음, 욕망과 의지—가 가장 자유롭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첫 장면에서 주인공 영걸은 MT에서 나비를 쫓다 만난 여성의 환타를 마시고 죽을 뻔한 일을 겪는데, 나비·죽음·우연이 교차하는 이 순간은 이후 전개될 세계의 방향을 예고합니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단어는 ‘의지’입니다. 영걸에게 책을 팔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며 ‘의지’를 외쳐대고 <의지의 승리>라는 책을 권유하던 노인은 살해되고, 죽어서도 유령으로 등장하여 ‘의지’를 외치다가 화장된 뒤 바람 속으로 사라집니다. 바람에 날리는 그 순간까지도 노인은 “의지가 살아 있는 동안 난 안 죽어. 난 의지다, 의지다, 의지다!”, “난 안죽는다 안죽는다 의지다 의지다 의지야!!!으하하하! 사나이는 의지다. 사나이는 의지다 의지다 의지야!”라고 소리 지르는데요. “나는 이 책을 통달하고 죽음을 추방했다. 의지의 승리인 것이다.”라는 생에 대한 그의 과장된 외침이 가장 허무한 형태로 소멸하는 이 장면은, 인간이 끝내 붙잡으려는 의지가 역설적으로 무척 덧없어 보이게 합니다.
가장 기묘하고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하는 2천 년 전 신라의 여인 이화시가 유골에서 환생하는 에피소드를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신라 시대에 살았던 그녀는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무당을 찾고, 무당의 말대로 동굴에 들어가 30일 동안 단식을 합니다. 그리고 2천 년 후 깨어난 뒤 자신이 결혼하게 될 남자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인데요. 다소 유치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 영화는 이를 무척 독특하고 흥미롭게 끌고 갑니다. 환생한 신라의 여인 이화시는 영걸과 사랑을 나누지만, 사랑에 빠진 그녀는 열흘에 한 번씩 사람의 간을 먹어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고 결국 다시 유골로 돌아가는데요.
여기서 무엇보다도 압권은 ‘뻥튀기 러브씬’입니다!
가난한 영걸은 용돈벌이로 뻥튀기 기계를 사는데, 어느 날 나타난 신라 여인에게 그것을 자랑하며 연신 뻥튀기를 튀겨냅니다. 하얀 뻥튀기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르고, 두 사람은 그 뻥튀기 위에 누워 사랑을 나눠요. 그들의 사랑과는 무관하게 뻥튀기 기계는 쉼 없이 제 할 일을 계속합니다. 마치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려는 듯, 혹은 축복하려는 듯. 하얗고 동그란 뻥튀기들이 바닥에 조용히 쌓여가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움과 기묘한 아름다움이 뒤섞이며 독특한 이미지 감각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또 다른 여성 경미로 이어지며 삶과 죽음의 반복을 강조합니다. 죽음을 사랑의 절정이라 말하는 경미, 삶에 무심한 듯한 영걸, 죽음을 추방했다 주장하다 사라지는 노인, 사랑 때문에 죽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화시. 마지막에 영걸이 처음으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말하는 순간 곧바로 죽음에 휩쓸리고, 그는 노인의 대사를 되풀이합니다. “의지가 있으면 죽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철학적인 대사를 연극처럼 혹은 시를 낭독하듯이 반복합니다.
김기영은 이 영화를 “생각하기도 싫은 쓰레기 영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살인 나비를 쫓는 여인>은 <하녀>(1960)나 <이어도>(1977)만큼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튼 이 영화는 끊임없이 ‘의지’에 대해 말하며 삶과 죽음, 욕망과 소멸이 끝없이 뒤엉키는 세계 속에서 질문합니다.
인간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으며, 무엇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가!
2. Psycho 알프레드 히치콕 | 미국 | 1960 | 109분 | DCP | 흑백




알프레드 히치콕 <사이코>, 출처, 유튜브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은 ‘서스펜스의 거장’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 영화감독으로, 관객의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고 일상 속 평범한 공간을 공포의 장소로 바꾸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이죠. ‘호러’는 ‘머리털이 곤두서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horrere’에서 파생된 단어로 공포 영화, 호러라는 장르는 영화 산업의 시작과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장르라고 합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는 괴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평범한 방의 창문이나 어느 골목의 그림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이 스며듭니다. 히치콕은 관객의 심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간파하고 이를 극적으로 활용하지요. 그는 관음, 집착, 억눌린 욕망처럼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그의 영화는 단순히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 심리의 균열을 예리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작품 전체가 마치 하나의 심리 실험극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싸이코>는 외딴 도로변에 있는 모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소재로한 여성이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여 도주하다가 우연히 머문 모텔에서 잔혹하게 살해되는 영화로 정신분석학이 영화 이론으로 적용된 이래 그 이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품으로 거론되고 있어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말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가 ‘관음증(voyeurism)’입니다. 관음증은 타인의 사적 영역을 몰래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쾌감을 얻는 심리를 말하는데, 사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행위 또한 이러한 관음적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아요.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이미 누군가의 삶을 몰래 훔쳐보는 위치에 놓여 있거든요. 〈사이코〉는 이러한 관음증적 구조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당시 헐리우드에서는 히치콕의 연출 방식과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여러 가십과 오해가 뒤따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베이츠 모텔의 방에는 노먼이 투숙객을 훔쳐볼 수 있도록 벽 뒤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죠. 노먼은 그 구멍으로 마리온을 훔쳐봅니다. 노먼만 마리온을 훔쳐보는 것일까요? 관객인 우리, ‘나’는 자연스럽게 노먼의 시선과 노먼의 감정에 동일시 되죠. <사이코>는 정신분석학에서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현대 정신분석학으로 확장되며 라캉의 이론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관음증’은 ‘눈의 욕망’, 즉 대타자의 응시에 대한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히치콕의 영화들—특히 <현기증>, <이창>, <사이코>—은 라캉의 주체 형성 단계와 함께 분석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데, 그중에서도 <사이코>는 종종 ‘실재계(the Real)’의 차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언급됩니다. 라캉이 말하는 실재계란 욕망이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균열의 순간, 설명 불가능한 공포의 차원입니다. <사이코>의 싸늘한 공포는 바로 이 실재계가 스며드는 틈에서 발생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불안과 초조 속에서 동일시의 대상을 끊임없이 바꿔가며 감정이입하게 되죠.
<사이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역시 샤워 신입니다. 재닛 리의 몸을 향해 휘둘러지는 식칼, 비명을 찢어놓는 듯한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와 여인의 눈동자를 잇는 기하학적 이미지들은 볼 때마다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촬영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 한 장면을 위해 무려 스무 번 이상 촬영이 반복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진 신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장면은 치밀한 계산과 정밀한 리듬 위에서 완성된, 거의 ‘수학적’이라 할 만한 이미지의 집합처럼 느껴지거든요. 또한 이야기 중반에 여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살해되어 사라지는 설정 자체도 당시 헐리우드에서는 전례가 없던 파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샤워 신은 영화사적으로도, 서사 구조의 차원에서도 여러모로 중요한 장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살인 장면에서 카메라의 위치는 가해자의 시선과 거의 완벽히 겹쳐 있습니다. 히치콕은 이렇게 철저히 계산된 구도를 통해 실제적인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끌어올립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설계된 장면이라 해도 이러한 심리 효과를 정확히 구현하는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그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어떤 사운드트랙을 선택했기에 저토록 기계적이고 날카로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음악이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결국 그 음악이 <사이코>의 공포를 압도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죠. 청각, 특히 음악이 공포를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드는 음향 효과는 공포영화의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버나드 허먼의 음악은 거칠고 불쾌한 주파수를 지닌 현악기의 비명을 활용해 무조적이고 불안정한 소리를 만들어냈고, 이는 이후 공포영화 음악의 전형을 세웠습니다. 정교하게 계산된 시각적 연출 위에 이러한 ‘기계적’ 음향 효과가 더해지며, 샤워 신은 완벽한 관음적 살인의 장면으로 완성됩니다.
문제적인 영화였던 만큼 뒷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관음증을 너무 노골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낸 탓에 당시 개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검열위원회는 오프닝 장면에 대해서는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샤워 신에 이르러서는 만장일치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죠. 그러나 정작 그들은 무엇이 자신들을 불쾌하게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는 <사이코>가 얼마나 심리적이고 감각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영화인지 다시금 확인하게 해줍니다. 결국 검열위원회는 표결 끝에 상영을 승인했고, ‘전 연령 관람 가능’ 판정을 내리되 ‘도덕적으로 불쾌한 부분이 일부 있다’는 단서 조항을 덧붙였습니다. 8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사이코>는 미국에서만 900만 달러, 해외에서 약 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히치콕은 언제나 관객의 반응과 심리에 집중했던 감독으로, 도덕적 메시지나 사회적 성찰보다는 시각적·청각적 장치를 통해 관객을 어떻게 흔들어놓을 것인가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의 영화는 때때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잔혹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사이코>는 이렇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리며 관객을 끝까지 영화에 몰입시키죠.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닌 심리적 철학적 실험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그 속에서 불안과 쾌감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히치콕의 <사이코>는 그가 구축한 관음의 미학이 가장 정교하고 완성도 높게 구현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득, 멀쩡해 보이던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에게 그 ‘어머니’는 과연 실제로 존재했던 걸까요? 노먼을 지배하고 조종하던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뼈만 남은 어머니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싸이코’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진실을 마주한 순간에도 어딘지 모를 불쾌하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남고, 마지막 장면에서 노먼이 ‘씨익’ 웃는 묘한 웃음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찜찜함을 남기죠.
가난한 연인과의 미래를 위해 사장의 돈 4만 달러를 훔쳐 도망치다 모텔에 잠시 들른 사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메리언. 그녀는 그 돈으로 연인과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이중시선 상영시간표]



국립현대미술관 근처에는 경복궁과 함께 정독 도서관, 학고재, 금호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의 미술관이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소격동)
02-3701-9500
[지하철]
3혹선 안국역 1번 출구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주차]
운영시간(매일) 오전 8시–오후 10시 30분 시간당 4,200원
에디터 탁선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내비게이션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 1층에 위치한 극장, MMCA 영상관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MMCA 필름앤비디오는 2025년 11월 26일부터 2025년 1월 10일까지 <이중시선>을 선보입니다.
올해 마지막 프로그램인 <이중시선>은 12편의 영화를 6쌍으로 묶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거나 해석되도록 구성해,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다른 시대와 장르를 지닌 12편의 영화를 통해, 당대에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던 작품들을 다시 조명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OTT, 유튜브 등 동시대 미디어 환경에서 범람하는 영상들, 멀티플렉스 극장의 재상영작, 고전 영화 목록에 포함되지 않아 잊힌 듯 취급되어 온 작품들을 서로 짝지어 제시함으로써,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다시 생각해보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이중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도록 유도합니다. 김기영, 할 애쉬비, 르네 비에네, 스티브 오데커크, 알프레드 히치콕 등 국내외 12명의 감독과 그들의 작품이 선정되었습니다.
총 6개의 프로그램으로 2편씩 12편의 영화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1978) | 김기영
해롤드와 모드(Harold and Maude, 1971) | 할 애쉬비(Hal Ashby)
2.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 1973) | 르네 비에네(René Viénet)
퓨전 쿵푸 | 스티브 오데커크(Steve Oedekerk)
3.
싸이코(Psycho, 1960) |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싸이코(Psycho, 1998) |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4.
버든 오브 드림즈(Burden of Dreams, 1982) | 레슬리 클리프(Les Blank)
카메라를 든 사람(Man with a Movie Camera, 1929) |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
5.
우리 모두의 나치(Our Nazi, 1984) | 로버트 크레이머(Robert Kramer)
Z32(2008) | 아비 모그라비(Avi Mograbi)
6.
넘버3(1997) | 송능한
품행제로(2002) | 정윤철
개막작인 김기영 감독의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와 할 애쉬비 감독의 <해롤드와 모드>는 죽음을 향한 욕망을 다루며 기존 질서와 규범의 전복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공유합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르네 비에네의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와 스티브 오데커크의 <퓨전 쿵푸>를 통해 아시아 무술 영화를 새로운 사유의 장으로 확장해 봅니다.
세 번째 프로그램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 <싸이코>와, 38년 후 이를 동일하게 재촬영하려 했던 구스 반 산트의 <싸이코>를 함께 상영합니다.
네 번째 섹션에서는 <버든 오브 드림즈>와 <카메라를 든 사람>을 통해 영화 제작 현장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 모두의 나치>와 <Z32>는 영화를 통한 재현의 윤리적 불안정성을 탐구합니다.
마지막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영화 <넘버3>와 <품행제로>를 상영해, 하이틴 복고 열풍과 조폭 영화 성공 신화가 시작된 임계점을 조명하며 한국 대중영화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시대 감수성을 열어갔는지 보여줍니다.
김기영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출처, 유튜브
영화를 종종 ‘유령(ghost)’에 비유하곤 합니다. 영화관 역시 유령이 소환되는 어둠 속의 장소, 곧 ‘유령의 공간’이라고 불리지요. 그 이유는 여러 의미를 품고 있겠지만, 영화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들고, 사라진 것을 다시 불러들이는 예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두운 극장 안,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어떤 공간과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를 마주하고, 그 세계 속으로 깊이 몰입합니다. 영화는 하나의 현실을 스크린 위에 잠시 소환하고, 관객은 그것을 바라보며 다른 현실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 극장 밖으로 나서는 순간, 우리는 다시 또 다른 현실을 살아가게 되지요. 아마도 이렇게 존재하지 않던 것들을 눈앞에 불러오고, 실체 없는 이미지로 세계를 만들어내는 점이 유령의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에, 영화를 ‘유령’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이유에 대해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관객들에게 다층적인 서사와 미장센을 갖춘 확장된 영화 세계를 선사하기 위한 시도”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술관은 이번 <이중시선>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와 미술의 경계 지점을 새롭게 보여주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MMCA 필름앤비디오 <이중시선>이 제안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짝지어진 두 영화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가로지르는지 천천히 체감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섯 개의 프로그램 중 첫 번째 프로그램에 포함된 김기영 감독의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1978)와, 세 번째 프로그램의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 작품인 <사이코>(Psycho, 1960)를 소개합니다.
1.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김기영 | 한국 | 1978 | 110분 | DCP | 컬러
김기영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출처, 유튜브
김기영(1919–1998) 감독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한국영화사에서 김기영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으로 ‘기괴한 기인’으로 기억되는 감독입니다. <하녀>, <화녀>, <충녀> 등 인간의 욕망과 근원적 충동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들로 유명하며, 시나리오부터 미술·소품까지 모두 직접 제작할 정도로 영화적 세계를 철저히 스스로 구축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오래전에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 감독으로 김기영을 꼽은 바 있으며, 전문가들 역시 그의 영화를 대중성과 시대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1978년작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는 평가가 엇갈리는 작품이지만, 오히려 김기영이 천착해온 주제—삶과 죽음, 욕망과 의지—가 가장 자유롭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첫 장면에서 주인공 영걸은 MT에서 나비를 쫓다 만난 여성의 환타를 마시고 죽을 뻔한 일을 겪는데, 나비·죽음·우연이 교차하는 이 순간은 이후 전개될 세계의 방향을 예고합니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단어는 ‘의지’입니다. 영걸에게 책을 팔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며 ‘의지’를 외쳐대고 <의지의 승리>라는 책을 권유하던 노인은 살해되고, 죽어서도 유령으로 등장하여 ‘의지’를 외치다가 화장된 뒤 바람 속으로 사라집니다. 바람에 날리는 그 순간까지도 노인은 “의지가 살아 있는 동안 난 안 죽어. 난 의지다, 의지다, 의지다!”, “난 안죽는다 안죽는다 의지다 의지다 의지야!!!으하하하! 사나이는 의지다. 사나이는 의지다 의지다 의지야!”라고 소리 지르는데요. “나는 이 책을 통달하고 죽음을 추방했다. 의지의 승리인 것이다.”라는 생에 대한 그의 과장된 외침이 가장 허무한 형태로 소멸하는 이 장면은, 인간이 끝내 붙잡으려는 의지가 역설적으로 무척 덧없어 보이게 합니다.
가장 기묘하고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하는 2천 년 전 신라의 여인 이화시가 유골에서 환생하는 에피소드를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신라 시대에 살았던 그녀는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무당을 찾고, 무당의 말대로 동굴에 들어가 30일 동안 단식을 합니다. 그리고 2천 년 후 깨어난 뒤 자신이 결혼하게 될 남자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인데요. 다소 유치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 영화는 이를 무척 독특하고 흥미롭게 끌고 갑니다. 환생한 신라의 여인 이화시는 영걸과 사랑을 나누지만, 사랑에 빠진 그녀는 열흘에 한 번씩 사람의 간을 먹어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고 결국 다시 유골로 돌아가는데요.
여기서 무엇보다도 압권은 ‘뻥튀기 러브씬’입니다!
가난한 영걸은 용돈벌이로 뻥튀기 기계를 사는데, 어느 날 나타난 신라 여인에게 그것을 자랑하며 연신 뻥튀기를 튀겨냅니다. 하얀 뻥튀기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르고, 두 사람은 그 뻥튀기 위에 누워 사랑을 나눠요. 그들의 사랑과는 무관하게 뻥튀기 기계는 쉼 없이 제 할 일을 계속합니다. 마치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려는 듯, 혹은 축복하려는 듯. 하얗고 동그란 뻥튀기들이 바닥에 조용히 쌓여가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움과 기묘한 아름다움이 뒤섞이며 독특한 이미지 감각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또 다른 여성 경미로 이어지며 삶과 죽음의 반복을 강조합니다. 죽음을 사랑의 절정이라 말하는 경미, 삶에 무심한 듯한 영걸, 죽음을 추방했다 주장하다 사라지는 노인, 사랑 때문에 죽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화시. 마지막에 영걸이 처음으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말하는 순간 곧바로 죽음에 휩쓸리고, 그는 노인의 대사를 되풀이합니다. “의지가 있으면 죽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철학적인 대사를 연극처럼 혹은 시를 낭독하듯이 반복합니다.
김기영은 이 영화를 “생각하기도 싫은 쓰레기 영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살인 나비를 쫓는 여인>은 <하녀>(1960)나 <이어도>(1977)만큼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튼 이 영화는 끊임없이 ‘의지’에 대해 말하며 삶과 죽음, 욕망과 소멸이 끝없이 뒤엉키는 세계 속에서 질문합니다.
인간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으며, 무엇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가!
2. Psycho 알프레드 히치콕 | 미국 | 1960 | 109분 | DCP | 흑백
알프레드 히치콕 <사이코>, 출처, 유튜브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은 ‘서스펜스의 거장’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 영화감독으로, 관객의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고 일상 속 평범한 공간을 공포의 장소로 바꾸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이죠. ‘호러’는 ‘머리털이 곤두서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horrere’에서 파생된 단어로 공포 영화, 호러라는 장르는 영화 산업의 시작과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장르라고 합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는 괴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평범한 방의 창문이나 어느 골목의 그림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이 스며듭니다. 히치콕은 관객의 심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간파하고 이를 극적으로 활용하지요. 그는 관음, 집착, 억눌린 욕망처럼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그의 영화는 단순히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 심리의 균열을 예리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작품 전체가 마치 하나의 심리 실험극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싸이코>는 외딴 도로변에 있는 모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소재로한 여성이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여 도주하다가 우연히 머문 모텔에서 잔혹하게 살해되는 영화로 정신분석학이 영화 이론으로 적용된 이래 그 이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품으로 거론되고 있어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말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가 ‘관음증(voyeurism)’입니다. 관음증은 타인의 사적 영역을 몰래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쾌감을 얻는 심리를 말하는데, 사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행위 또한 이러한 관음적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아요.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이미 누군가의 삶을 몰래 훔쳐보는 위치에 놓여 있거든요. 〈사이코〉는 이러한 관음증적 구조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당시 헐리우드에서는 히치콕의 연출 방식과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여러 가십과 오해가 뒤따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베이츠 모텔의 방에는 노먼이 투숙객을 훔쳐볼 수 있도록 벽 뒤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죠. 노먼은 그 구멍으로 마리온을 훔쳐봅니다. 노먼만 마리온을 훔쳐보는 것일까요? 관객인 우리, ‘나’는 자연스럽게 노먼의 시선과 노먼의 감정에 동일시 되죠. <사이코>는 정신분석학에서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현대 정신분석학으로 확장되며 라캉의 이론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관음증’은 ‘눈의 욕망’, 즉 대타자의 응시에 대한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히치콕의 영화들—특히 <현기증>, <이창>, <사이코>—은 라캉의 주체 형성 단계와 함께 분석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데, 그중에서도 <사이코>는 종종 ‘실재계(the Real)’의 차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언급됩니다. 라캉이 말하는 실재계란 욕망이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균열의 순간, 설명 불가능한 공포의 차원입니다. <사이코>의 싸늘한 공포는 바로 이 실재계가 스며드는 틈에서 발생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불안과 초조 속에서 동일시의 대상을 끊임없이 바꿔가며 감정이입하게 되죠.
<사이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역시 샤워 신입니다. 재닛 리의 몸을 향해 휘둘러지는 식칼, 비명을 찢어놓는 듯한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와 여인의 눈동자를 잇는 기하학적 이미지들은 볼 때마다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촬영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 한 장면을 위해 무려 스무 번 이상 촬영이 반복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진 신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장면은 치밀한 계산과 정밀한 리듬 위에서 완성된, 거의 ‘수학적’이라 할 만한 이미지의 집합처럼 느껴지거든요. 또한 이야기 중반에 여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살해되어 사라지는 설정 자체도 당시 헐리우드에서는 전례가 없던 파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샤워 신은 영화사적으로도, 서사 구조의 차원에서도 여러모로 중요한 장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살인 장면에서 카메라의 위치는 가해자의 시선과 거의 완벽히 겹쳐 있습니다. 히치콕은 이렇게 철저히 계산된 구도를 통해 실제적인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끌어올립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설계된 장면이라 해도 이러한 심리 효과를 정확히 구현하는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그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어떤 사운드트랙을 선택했기에 저토록 기계적이고 날카로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음악이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결국 그 음악이 <사이코>의 공포를 압도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죠. 청각, 특히 음악이 공포를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드는 음향 효과는 공포영화의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버나드 허먼의 음악은 거칠고 불쾌한 주파수를 지닌 현악기의 비명을 활용해 무조적이고 불안정한 소리를 만들어냈고, 이는 이후 공포영화 음악의 전형을 세웠습니다. 정교하게 계산된 시각적 연출 위에 이러한 ‘기계적’ 음향 효과가 더해지며, 샤워 신은 완벽한 관음적 살인의 장면으로 완성됩니다.
문제적인 영화였던 만큼 뒷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관음증을 너무 노골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낸 탓에 당시 개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검열위원회는 오프닝 장면에 대해서는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샤워 신에 이르러서는 만장일치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죠. 그러나 정작 그들은 무엇이 자신들을 불쾌하게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는 <사이코>가 얼마나 심리적이고 감각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영화인지 다시금 확인하게 해줍니다. 결국 검열위원회는 표결 끝에 상영을 승인했고, ‘전 연령 관람 가능’ 판정을 내리되 ‘도덕적으로 불쾌한 부분이 일부 있다’는 단서 조항을 덧붙였습니다. 8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사이코>는 미국에서만 900만 달러, 해외에서 약 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히치콕은 언제나 관객의 반응과 심리에 집중했던 감독으로, 도덕적 메시지나 사회적 성찰보다는 시각적·청각적 장치를 통해 관객을 어떻게 흔들어놓을 것인가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의 영화는 때때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잔혹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사이코>는 이렇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리며 관객을 끝까지 영화에 몰입시키죠.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닌 심리적 철학적 실험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그 속에서 불안과 쾌감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히치콕의 <사이코>는 그가 구축한 관음의 미학이 가장 정교하고 완성도 높게 구현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득, 멀쩡해 보이던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에게 그 ‘어머니’는 과연 실제로 존재했던 걸까요? 노먼을 지배하고 조종하던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뼈만 남은 어머니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싸이코’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진실을 마주한 순간에도 어딘지 모를 불쾌하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남고, 마지막 장면에서 노먼이 ‘씨익’ 웃는 묘한 웃음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찜찜함을 남기죠.
가난한 연인과의 미래를 위해 사장의 돈 4만 달러를 훔쳐 도망치다 모텔에 잠시 들른 사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메리언. 그녀는 그 돈으로 연인과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이중시선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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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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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