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기미술관
©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환기미술관은 본관, 별관, 달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관에서는 한국미술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뉴욕시대(1963-1974) 예술철학을 담은 전시 <Whanki_심상의 풍경: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이 2025년 8월 2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어집니다. 또한 달관/수향산방에서는 <김환기와 브라질. 새로운 우리의 노래로..>가 2025. 8. 22 - 2025. 12. 31까지 열립니다.
김환기가 깊이 애착을 가졌던 성북동 화실과 분위기가 닮은 부암동에 자리한 환기미술관은, 김환기 화백의 부인이자 설립자인 김향안의 오랜 노력과 헌신 속에서 1992년 11월 5일 문을 열었습니다. ‘미술관은 내용이다’라는 김향안의 철학 아래, 환기미술관은 개관 이래 줄곧 ‘예술의 공감과 나눔’을 지향해 왔습니다.
미술관의 건축은 우규승 건축가가 맡았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계획을,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88 서울올림픽 선수촌과 기자촌, 환기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우규승은 1967년 뉴욕에서의 인연으로 김환기 작가의 생활과 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많았고, 1974년 김환기 작고 후에는 그의 예술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환기재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김향안을 진심으로 지지했습니다. 1990년 착공을 시작으로 1992년 11월 본관이 완공되며 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이후 별관과 달관이 차례로 이어져 총 세 동의 건축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환기미술관은 자연과 건축, 그리고 김환기의 작품이 조화롭게 조응하는 공간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 환기미술관은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하며 그 예술적 가치와 건축적 아름다움을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수화 김환기가 평소 마음속에 그려두었던 집의 스케치에는, 아래층에 침실과 식당, 거실과 손님방이 자리하고 위층 전체는 화실과 창고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언제나 그림을 걸 방, 그리고 작품들이 제자리를 찾아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꿈꾸었지요.설립자 김향안에게 김환기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그의 분신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국에 세우는 환기미술관은 김환기의 작품들이 돌아가 쉴 집”이라 말했고, 실제로 “집을 짓고 이사하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지었다”고 회상했습니다.그 마음 덕분에, 지금의 환기미술관은 작품들이 편안히 숨 쉬고 관람객이 그 온기를 나누어 느낄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우규승 건축가는 미술관이 수화 김환기의 정서와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산과 달, 구름과 바위, 나무 같은 자연을 떠올리며, 한국의 정취가 스며 있으면서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공간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부암동은 큰 미술관을 품기에는 스케일이 작고, 대지의 형태도 복잡해 여건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차근차근 길을 찾아, 계획을 세운 지 5년 만에 마침내 미술관은 완성되었습니다. 작은 동네에 조심스레 놓인 한 채의 집처럼, 김환기의 세계를 품어낼 따뜻한 공간이 그렇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현재 환기미술관은 약 2500여점에 이르는 김환기와 국내외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환기미술관의 소장품은 뉴욕 환기재단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로 1992년 서울 환기미술관 완공 후 기증된 것입니다.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 생각하라(1969)’는 김환기의 문장처럼 환기미술관 김환기의 추상화를 감상하며 그가 시도했던 조형적인 표현들과 창작의 세계를, 그가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했던 세계를 느끼고 사색하는 시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Whanki_심상의 풍경: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은 김환기가 평생 탐구해온 자연의 본질, 그리고 그것이 가장 순수한 추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사유와 성찰을 ‘심상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펼쳐 보입니다.
전시는 뉴욕으로 떠나기 전, 홍익대에 재직하던 시기(1959-63)에 그린 드로잉에서 시작합니다. 이어 뉴욕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새벽별>(1964), 그리고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하는 대표작 ‘대형 점화’, 마지막으로 생애 끝자락에서 그린 <7-VII-74>(1974)까지 유화, 드로잉, 오브제 등 약 140여 점의 작품이 한자리에 소개됩니다. 또한 곳곳에는 김환기가 직접 남긴 ‘편지 그림’, ‘뉴욕 일기’, ‘에세이’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작품 뒤에 흐르는 그의 숨결과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과 삶, 그리고 아직 닿지 않은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김환기의 깊은 사유가 따뜻하게 담긴 전시입니다.
1963년, 김환기는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뉴욕으로 향하게 된 계기가 된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14점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어 1965년에는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실에 그 작품들이 전시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75년, 설립자 김향안은 그의 점화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회고전을 제13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개최하며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기렸습니다.
달관/수향산방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김환기와 브라질. 새로운 우리의 노래로…>는 당시의 인연이 되었던 이베트 모레노(Yvette Moreno)가 소장했던 작품 한 점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환기미술관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전시에서는 김환기에게 회화 부문 명예상을 안겨준 <섬의 달밤>과 회고전에 함께했던 <산월>을 비롯해, 상파울루 비엔날레가 지닌 의미와 김환기 예술 세계의 깊이를 함께 되새기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1963년부터 1964년까지를 흔히 ‘뉴욕 초기’라 부르는데, 이 시기는 김환기의 화풍이 가장 빠르게 변모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뉴욕에 도착한 1964년 무렵, 미국 미술계는 이미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었어요. 그해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국제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갈 것임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김환기는 바로 그 변화의 중심을 눈앞에서 마주하며, 새로운 예술의 흐름과 가능성을 체감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자연과 깊이 교감해 온 한국을 떠나 낯선 뉴욕에 정착한 그는, 기계문명과 빠른 속도, 그리고 끊임없는 경쟁으로 가득한 도시를 마주하며 조금씩 적응해 나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김환기 자신뿐 아니라 그의 작품 역시 이전과는 다른 한층 깊고 독창적인 세계가 형성됩니다.
달, 구름, 산, 항아리 같은 한국적 이미지는 서서히 화면에서 사라지고, 그의 회화는 점과 선, 면만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조형 실험의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1965년 이후 본격화되는 이 변화 속에서, 두꺼운 마티에르로 덮였던 이전의 화면은 얇은 안료의 층으로 가벼워지고, 화면은 더욱 평면적이며 철학적인 구조로 정제되었습니다. 점, 선, 면의 순수한 조형 질서 속에서 그는 오히려 더 깊고 고요한 서정성을 발견해 갔습니다. 당시 미국 미술계의 주된 경향은 색면회화였지만, 팝아트와 실험적 경향 또한 활발히 등장하던 격변기였습니다. 김환기는 미국 작가들의 작업을 때로는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실험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의 작품에도 그 영향이 은근히 스며 있습니다.
1965~68년 사이의 김환기의 작품들에서는 당시 뉴욕의 색면회화와 차이를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마크 로스코, 아돌프 고틀리브(Adolph Gottlieb, 1903~1974),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1915~) 같은 작가들처럼 상징적 형태를 향한 관심을 공유하면서도, 김환기의 화면은 극적인 대비보다 훨씬 정적인 감성과 시적인 명상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는 마치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캔버스와 종이에 조용히 감정을 쌓아 올렸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나타나는 청회색의 깊은 울림도 이 시기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무수히 찍힌 점들은 반복되지만 결코 같은 점이 없고, 규칙성과 불규칙성이 공존하는 내재적 질서를 이룹니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답고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1972. 김환기

김환기
©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 작품 이미지 및 어문 등을 포함한 김환기의 모든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에 있습니다. 무단 복제, 배포, 전송, 2차적 저작물 작성 등을 허용하지 않으며, 사용 시 반드시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환기미술관]
정규 도슨트는 별도의 사전 예약을 받지 않습니다.
단체 20인 이상은 정규 도슨트 참여가 제한됩니다.
[서울관광재단 × 환기미술관]
심성아 도슨트, 김찬용 도슨트의 특별 전시 해설과 아트토크가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1일 전까지 취소가 가능합니다.
11/16(일), 11/18(화) 11:00-13:00
11/25(화) 13:00 - 15:00 (서울예술 스페셜 1일 프로그램)




부암동 <윤동주 문학관>과 <ZAHA1993> 한옥카페를 소개합니다.

[관람시간]
매주 화-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입장마감 오후 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추석 연휴
단체 관람 및 기타 문의 : 02-391-7701 / @whankimuseum.org
[대중교통]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 3번 출구-G선 초록버스 1020, 7022, 7212 탁승-[부암동주민센터] 하차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 교보빌딩 앞-G선 초록버스 1020, 7212 탑승 - [부암동주민센터] 하차
[연락처]
대표 전화 02-391-7701
교육문의 02-391-7714
[주차안내]
관내 주차 가능한 공간이 매우 협소합니다.(동시 주차 최대 10대, 관람 시간(최대 2시간)까지만 가능)
자차 방문 시, 가급적 인근 공/민영 주차장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주변 주택가 및 골목 주차 불가하며, 신고 또는 견인 조치 될 수 있습니다.
에디터 탁선

환기미술관
©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환기미술관은 본관, 별관, 달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관에서는 한국미술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뉴욕시대(1963-1974) 예술철학을 담은 전시 <Whanki_심상의 풍경: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이 2025년 8월 2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어집니다. 또한 달관/수향산방에서는 <김환기와 브라질. 새로운 우리의 노래로..>가 2025. 8. 22 - 2025. 12. 31까지 열립니다.
김환기가 깊이 애착을 가졌던 성북동 화실과 분위기가 닮은 부암동에 자리한 환기미술관은, 김환기 화백의 부인이자 설립자인 김향안의 오랜 노력과 헌신 속에서 1992년 11월 5일 문을 열었습니다. ‘미술관은 내용이다’라는 김향안의 철학 아래, 환기미술관은 개관 이래 줄곧 ‘예술의 공감과 나눔’을 지향해 왔습니다.
미술관의 건축은 우규승 건축가가 맡았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계획을,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88 서울올림픽 선수촌과 기자촌, 환기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우규승은 1967년 뉴욕에서의 인연으로 김환기 작가의 생활과 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많았고, 1974년 김환기 작고 후에는 그의 예술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환기재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김향안을 진심으로 지지했습니다. 1990년 착공을 시작으로 1992년 11월 본관이 완공되며 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이후 별관과 달관이 차례로 이어져 총 세 동의 건축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환기미술관은 자연과 건축, 그리고 김환기의 작품이 조화롭게 조응하는 공간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 환기미술관은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하며 그 예술적 가치와 건축적 아름다움을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수화 김환기가 평소 마음속에 그려두었던 집의 스케치에는, 아래층에 침실과 식당, 거실과 손님방이 자리하고 위층 전체는 화실과 창고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언제나 그림을 걸 방, 그리고 작품들이 제자리를 찾아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꿈꾸었지요.설립자 김향안에게 김환기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그의 분신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국에 세우는 환기미술관은 김환기의 작품들이 돌아가 쉴 집”이라 말했고, 실제로 “집을 짓고 이사하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지었다”고 회상했습니다.그 마음 덕분에, 지금의 환기미술관은 작품들이 편안히 숨 쉬고 관람객이 그 온기를 나누어 느낄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우규승 건축가는 미술관이 수화 김환기의 정서와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산과 달, 구름과 바위, 나무 같은 자연을 떠올리며, 한국의 정취가 스며 있으면서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공간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부암동은 큰 미술관을 품기에는 스케일이 작고, 대지의 형태도 복잡해 여건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차근차근 길을 찾아, 계획을 세운 지 5년 만에 마침내 미술관은 완성되었습니다. 작은 동네에 조심스레 놓인 한 채의 집처럼, 김환기의 세계를 품어낼 따뜻한 공간이 그렇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현재 환기미술관은 약 2500여점에 이르는 김환기와 국내외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환기미술관의 소장품은 뉴욕 환기재단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로 1992년 서울 환기미술관 완공 후 기증된 것입니다.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 생각하라(1969)’는 김환기의 문장처럼 환기미술관 김환기의 추상화를 감상하며 그가 시도했던 조형적인 표현들과 창작의 세계를, 그가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했던 세계를 느끼고 사색하는 시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Whanki_심상의 풍경: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은 김환기가 평생 탐구해온 자연의 본질, 그리고 그것이 가장 순수한 추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사유와 성찰을 ‘심상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펼쳐 보입니다.
전시는 뉴욕으로 떠나기 전, 홍익대에 재직하던 시기(1959-63)에 그린 드로잉에서 시작합니다. 이어 뉴욕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새벽별>(1964), 그리고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하는 대표작 ‘대형 점화’, 마지막으로 생애 끝자락에서 그린 <7-VII-74>(1974)까지 유화, 드로잉, 오브제 등 약 140여 점의 작품이 한자리에 소개됩니다. 또한 곳곳에는 김환기가 직접 남긴 ‘편지 그림’, ‘뉴욕 일기’, ‘에세이’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작품 뒤에 흐르는 그의 숨결과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과 삶, 그리고 아직 닿지 않은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김환기의 깊은 사유가 따뜻하게 담긴 전시입니다.
1963년, 김환기는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뉴욕으로 향하게 된 계기가 된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14점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어 1965년에는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실에 그 작품들이 전시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75년, 설립자 김향안은 그의 점화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회고전을 제13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개최하며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기렸습니다.
달관/수향산방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김환기와 브라질. 새로운 우리의 노래로…>는 당시의 인연이 되었던 이베트 모레노(Yvette Moreno)가 소장했던 작품 한 점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환기미술관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전시에서는 김환기에게 회화 부문 명예상을 안겨준 <섬의 달밤>과 회고전에 함께했던 <산월>을 비롯해, 상파울루 비엔날레가 지닌 의미와 김환기 예술 세계의 깊이를 함께 되새기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1963년부터 1964년까지를 흔히 ‘뉴욕 초기’라 부르는데, 이 시기는 김환기의 화풍이 가장 빠르게 변모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뉴욕에 도착한 1964년 무렵, 미국 미술계는 이미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었어요. 그해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국제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갈 것임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김환기는 바로 그 변화의 중심을 눈앞에서 마주하며, 새로운 예술의 흐름과 가능성을 체감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자연과 깊이 교감해 온 한국을 떠나 낯선 뉴욕에 정착한 그는, 기계문명과 빠른 속도, 그리고 끊임없는 경쟁으로 가득한 도시를 마주하며 조금씩 적응해 나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김환기 자신뿐 아니라 그의 작품 역시 이전과는 다른 한층 깊고 독창적인 세계가 형성됩니다.
달, 구름, 산, 항아리 같은 한국적 이미지는 서서히 화면에서 사라지고, 그의 회화는 점과 선, 면만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조형 실험의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1965년 이후 본격화되는 이 변화 속에서, 두꺼운 마티에르로 덮였던 이전의 화면은 얇은 안료의 층으로 가벼워지고, 화면은 더욱 평면적이며 철학적인 구조로 정제되었습니다. 점, 선, 면의 순수한 조형 질서 속에서 그는 오히려 더 깊고 고요한 서정성을 발견해 갔습니다. 당시 미국 미술계의 주된 경향은 색면회화였지만, 팝아트와 실험적 경향 또한 활발히 등장하던 격변기였습니다. 김환기는 미국 작가들의 작업을 때로는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실험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의 작품에도 그 영향이 은근히 스며 있습니다.
1965~68년 사이의 김환기의 작품들에서는 당시 뉴욕의 색면회화와 차이를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마크 로스코, 아돌프 고틀리브(Adolph Gottlieb, 1903~1974),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1915~) 같은 작가들처럼 상징적 형태를 향한 관심을 공유하면서도, 김환기의 화면은 극적인 대비보다 훨씬 정적인 감성과 시적인 명상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는 마치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캔버스와 종이에 조용히 감정을 쌓아 올렸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나타나는 청회색의 깊은 울림도 이 시기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무수히 찍힌 점들은 반복되지만 결코 같은 점이 없고, 규칙성과 불규칙성이 공존하는 내재적 질서를 이룹니다.
김환기
©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 작품 이미지 및 어문 등을 포함한 김환기의 모든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에 있습니다. 무단 복제, 배포, 전송, 2차적 저작물 작성 등을 허용하지 않으며, 사용 시 반드시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환기미술관]
정규 도슨트는 별도의 사전 예약을 받지 않습니다.
단체 20인 이상은 정규 도슨트 참여가 제한됩니다.
[서울관광재단 × 환기미술관]
심성아 도슨트, 김찬용 도슨트의 특별 전시 해설과 아트토크가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1일 전까지 취소가 가능합니다.
11/16(일), 11/18(화) 11:00-13:00
11/25(화) 13:00 - 15:00 (서울예술 스페셜 1일 프로그램)
부암동 <윤동주 문학관>과 <ZAHA1993> 한옥카페를 소개합니다.
[관람시간]
매주 화-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입장마감 오후 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추석 연휴
단체 관람 및 기타 문의 : 02-391-7701 / @whankimuseum.org
[대중교통]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 3번 출구-G선 초록버스 1020, 7022, 7212 탁승-[부암동주민센터] 하차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 교보빌딩 앞-G선 초록버스 1020, 7212 탑승 - [부암동주민센터] 하차
[연락처]
대표 전화 02-391-7701
교육문의 02-391-7714
[주차안내]
관내 주차 가능한 공간이 매우 협소합니다.(동시 주차 최대 10대, 관람 시간(최대 2시간)까지만 가능)
자차 방문 시, 가급적 인근 공/민영 주차장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주변 주택가 및 골목 주차 불가하며, 신고 또는 견인 조치 될 수 있습니다.
에디터 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