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서울시립미술관.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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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서소문), 낙원상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降靈: 영혼의 기술>이 열리고 있습니다.

정동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은 1928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성재판소의 파사드를 보존하여 기존 스타일을 현대식으로 개보수한 건물입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말하는 ‘과거의 정신이 오늘날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라는 주제는 이 장소와 맥을 같이 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지난 23년간 전시되었던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외에도 다양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 워크숍, 공연, 강연이 열립니다.


전시는 8월 26일부터 11월 23까지 이어지는데요. 예술감독으로 할리 에어스(Hallie Ayres, 큐레이터, 연구자, 미술사학자), 안톤 비도클(Anton Vidokle, 작가, 영화감독) 루카스 브라시스키스(Lukas Brasiskis, 아티스트 필름과 실험 영화를 연구하는 필름 큐레이터)가 참여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는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의 발전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경험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지난 10년간 대안적 형태의 지식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의 수가 급격히 증가해 온 현상에 주목하고 억압된 문화적 전통에 담겨 있는 신비주의, 예지적 접근, 비밀스러운 시선이 예술 담론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배경을 살펴봅니다. 


전시는 총 11개의 소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0. 부활카페 

1. 어제 온다면, 내일은 최초가 되리라

2. 마녀와 영매의 것

3. 트랜스

4. 실천적 우주론

5. 아픔을 치유하고, 망자를 일으키며, 환자를 씻기고, 귀신을 쫒아내라

6. 테크네

7. 등가 교환

8. 적들이 승리한 세상에 망자의 안식은 없다

9. 유리드미

10. 시네마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은 <서울아트시네마>와 <낙원상가>에서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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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한국전쟁 이후 생겨난 낙원시장 위로 지어진 <낙원상가>는 한국의 근대적 건축양식을 상징하는 건물로, 건립 이후 수십 년간 서울의 음악 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서울의 빠른 변화속에서 한때 건물의 철거 위기도 있었으나 시민들의 노력으로 그  자리에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낙원상가는 지난 반세기의 격변을 증언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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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002년 낙원상가에서 개관한 이후, 몇 차례 이전을 거쳐 현재의 경향신문 건물에 자리 잡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교육적 문화적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입니다. 이곳에서는 영화의 문화 다양성과 사회 교육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거장들의 고전 영화와 독립 영화들이 주로 상영되며 해외 게스트와, 평론가, 예술가 초청 강연이 열립니다.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는 비엔날레 영화 프로그램은 ‘망자와의 대화’, ‘조상들의 숨결’, ‘프시케와 스크린’, ‘일상 속 신비주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총 스물 한편의 작품이 2025년 8월 30일(토) ~ 11월 22일(토)까지 상영됩니다. 이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영화 프로그램은 영화를 일상 속 신성의 발현으로 보는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비전과 영화를 공동 의례로 살펴보는 ‘마야 데렌’의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1, 2, 3층에 걸쳐 전시되어 있는 회화, 설치, 미디어 작품의 이해를 위해 ‘도슨트 신청’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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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은 예술가들에게 낯설지 않은 주제입니다.

‘지성’의 방식과 달리, ‘영혼’은 이성과 논리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죠. 그래서인지 ‘영혼’이라는 단어는 때로 세속적이거나 기복적인 의미로 오해되곤 합니다. 


최초의 인류는 왜, 어떤 이유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을까요?

아마 그 시작은 지금 우리가 부르는 ‘예술’이라기보다, 훨씬 더 자발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그림을 그리는 순간, 세상과 교감하고자 하는 주술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플라톤은 예술이 현실을 흉내 내고 모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이 진리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진, 그저 그림자 같은 것이라며 그 가치를 부정했지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예술이 지닌 다른 힘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예술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감정을 일으키고 다시 정화하는 치유의 힘을 지닌다고 보았어요.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미디어비엔날레 전시는 우리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기 힘든 ‘영적 경험’을 예술가들이 어떻게 체험하고, 또 어떻게 작품 속에 담아내는지, 나아가 이 ‘영적 경험’이 예술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지니는지에 주목합니다. 

 

‘영적 경험(spiritual experience)’이란 일상적인 감각이나 사고를 넘어서는 깊고도 내적인 체험을 말합니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차원에 가까운 영성은, 인간이 삶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과 이어지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경험은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어떤 차원과 닿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찾아옵니다.

종교적으로는 신이나 절대자와의 만남으로, 비종교적으로는 자연 속에서, 혹은 예술이나 명상 속에 깊이 몰입하는 체험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의식의 변형 상태’라고 설명하고, 뇌과학에서는 이러한 영적 경험이 우리 뇌와 마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탐구해왔습니다.


이러한 영적 경험과 의식의 변형 상태는 사실 우리의 본능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명은 살아가며 눈앞의 위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능’과 ‘지성’을 함께 사용합니다. 물론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흔히 인간은 지성적인 존재로, 인간이 아닌 동물은 본능적인 존재로 생각하곤 하죠.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은 생명을 하나의 근원적인 에너지로 이해하면서, 생명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내적인 인식, 즉 ‘본능’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본능’은 단순한 충동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본능이 어떤 외부 대상에 대해 어떤 앎을 가지게 될 때, 본능은 그 대상의 안으로 들어가, 그 대상을 안으로부터 인식하는 것에 의해서 그러한 앎을 가지게 된다.’ 

-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베르그송은 어떤 절차나 논리를 거치지 않고, 매우 빠르고 직관적으로 작동하는 본능에 주목하고, 본능이야말로 정확하고 생생한 인식의 형태일 수 있다고 하며 ‘본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지성 중심의 한계를 넘어, 종교적·신비적 체험이 인간 인식의 또 다른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종교적 체험을 설명하기 위해 약물 복용 후의 의식 변화를 예로 들며, 두 경험 모두 일상의 의식을 넘어서는 변성된 상태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종교적 체험, 꿈, 명상, 임사체험(NDE), 약물 체험 등은 모두 의식이 변형된 상태에서 경험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간의 심층의식은 단순히 개인적인 욕망이나 억압의 산물이 아니라, 세계와 생명의 본질을 품고 있는 자연스러운 내면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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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 <무제(1920년 12월 5일 스위스 도르나흐 강연의 칠판드로잉)>, 1920.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어둡고 깊은 동굴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검은 칠판 드로잉들이 벽면을 따라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철학자이자 사회 개혁가, 그리고 건축가였던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가 그의 인지학(Anthroposophy) 강연 중에 사용했던 칠판에 남긴 그림들입니다. 처음엔 단순히 강의를 돕기 위한 스케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형태는 점점 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으로 발전했죠. 그런데 이 드로잉들을 단순히 기록물로만 봐야 할까요?

슈타이너의 칠판 드로잉에는 그가 강연하던 순간의 사유와 감정, 그리고 마음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는 강연이 끝난 뒤, 칠판의 그림을 검은 도화지 위로 옮겨두었고, 때로는 덧그리거나 날짜를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그것은 단순한 강의의 흔적이라기보다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예술가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많이 닮아 있어요.

 

미술관에 놓인 슈타이너의 칠판 드로잉은 이제 분명히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 안에는 예술과 기록, 교육과 영감의 경계를 넘나드는, 묘하고도 풍부한 의미가 깃들어 있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드로잉들이 처음부터 예술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합니다. 애초에는 예술로 기획되지 않았던 추상적 이미지들이 시간이 흐르며 예술로 인식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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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나 하우튼, <부활하신 주님>, 1864. 

 

조지아나 하우튼(1814–1884)은 1859년, 마흔 중반의 나이에 처음으로 영성주의(Spiritualism)를 접하게 됩니다. 그녀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언니 질라(Zilla)의 죽음 이후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9년 뒤 강령술을 통해 세상을 떠난 언니와 교감의 경험을 한 후 다시 붓을 들게 되었죠. 그때부터 하우튼은 약 20년에 걸쳐, 1861년부터 천사와 성인들의 영적 지시를 받아 ‘영혼의 그림’이라 부르는 추상 수채화 연작을 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실제로 영매로서의 수련까지 받으며 여러 영혼들과의 교신을 통해 독창적인 시각 세계를 완성해 나갑니다. 그림의 뒷면에는 그녀가 교신 중 들었다는 영혼의 목소리를 기록한 주석이 세심하게 남아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작품은 하우튼의 〈부활하신 주님(The Risen Lord)〉으로, 그 뒷면에는 그림에 담긴 의미와 상징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 있어요. 


영적인 체험은 종종 ‘비정상적’ 혹은 ‘혼미한 상태’로 간주되곤 하지요. 그런 점에서 하우튼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며 이런 세계를 감당했다는 게 놀랍기도 합니다

그녀는 1871년, 생전에 열린 유일한 개인전에서 평론가들의 조롱을 받았지만 시간이 흘러 2016년 런던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이 새롭게 재조명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오랜 시간 오해와 무시 속에 있던 한 예술가의 영적이고도 선구적인 실험이 뒤늦게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 셈이죠.

 

‘본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하죠. 무언가에 씌여서, 들려서, 사로잡혀서, 혹은 넋이 나가서 무언가를 한다고요. 영어의 haunted라는 단어도 같은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가가 작업에 몰두할 때, 철학자가 사유에 잠길 때, 어떤 힘에 이끌리듯 자신을 잊고 몰입하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본능의 상태, 창조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영혼의 기술’은 바로 이런 예술가의 기술과 닿아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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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르 귀마래스와 카스페르 악호이, <제르바시오 장군의 가족>, 2013/2014.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타마르 귀마래스와 카스페르 악호이는 함께 작업하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예술가들입니다. 이들은 오브제, 상황, 미술, 디자인, 건축이 남긴 역사적 흔적과, 그것을 보여주는 기관들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어요. 이번 작품의 배경은 브라질 고이아스 주의 작은 마을, 팔멜로입니다. 이곳에서는 마을 주민의 절반이 영매로 활동하며, 심령 치료 의식이 일상처럼 이어집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이론을 빌려 본능과 지성, 영혼의 관계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지만, 전시 속 작품들 중에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어요.


영상 속에서는 주민들이 심령 치료를 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영혼이 삶에 개입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라고 믿고 있죠. 1929년 제르바시오 장군이 설립한 팔멜로 재단은 ‘자석 체인’ 치료법을 제도적으로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영상은, 영매가 기록한 스무 개의 아스트랄 도시 지도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공동체의 실천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힘을 보여줍니다.


이 전시가 이야기하는 ‘영혼의 기술’은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앞서 말했듯 어떻게 보면 이 ‘영혼의 기술’은 ‘예술가의 활동’과도 닮아 있기도 하고요. 설명하기 어렵고 이상해 보이는 이 이 기술은 그 가치를 증명하기도 이해시키키도 어렵지만 그 힘은 경험을 통해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체감하게 되는 것이죠. 이 심층의 영적 경험은 과학적 진리를 넘어, 일상적인 의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진리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동시에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문을 조용히 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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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포소, <증발하는 심포니>, 2025.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증발하는 심포니>는 물이 증기로 변하는 찰나의 순간을 담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그 과정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닐 거예요. 그보다는 관람자가 스스로 어떤 감각과 사유를 경험하도록 이끌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판 위에는 하나 또는 두 개의 돌이 고요히 놓여 있습니다. 그 풍경은 절제된 미감으로 이루어져, 차분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돌은 식물이나 동물처럼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이상하게 그 자체로 강한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수석(壽石)’이라는 말은 목숨 수(壽)와 돌 석(石)을 써서,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돌’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장수와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또 ‘수석(水石)’은 물가의 돌, 혹은 감상용 돌을 의미하는데, 옛 선비들은 이를 작은 자연의 축소판처럼 여기며 산수화의 세계를 감상하곤 했습니다. 일본의 ‘수이세키(水石)’ 문화 역시 이와 닮았지만, 정원과 다도, 그리고 선적인 감상법 속에서 발전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돌은 오래전부터 영적인 힘과 신비로움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은 바위 앞에서 기도를 드리거나, 길가에 돌을 차곡차곡 쌓으며 그 안에 자신들의 염원을 담았지요.

 

작품 가까이 다가서면, 돌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곧바로 증발하며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소리는 아주 섬세하게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며, 잠시나마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줍니다. 아마도 작품의 제목 <증발하는 심포니>는 바로 그 순간의 짧고도 깊은 울림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덧없이 사라지는 물방울의 증발은 시간의 흐름과 무상함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인간과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변용의 힘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가까이 다가서야 비로소 그 소리와 공기의 떨림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다만, 돌 표면이 꽤 뜨거우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증발하는 심포니>는 사라짐 속에서 드러나는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 너머 또 다른 우주의 가능성까지 사유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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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킴 쾨스터, 타란티즘, 2007.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이며, 때로는 사이키델릭한 이야기들에 주목하는 요아킴 쾨스터는, 인간의 신체와 마음이 지닌 현실적이면서도 상상적인 한계를 깊이 탐구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사진 연작, 책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억압된 역사와 잊힌 기억들을 다시 공동의 의식 속으로 불러냅니다. ‘타란티즘(Tarantism)’이라는 단어는 늑대거미나 타란툴라에게 물렸을 때 나타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 상태는 경련을 비롯한 여러 증상을 동반하는데, ‘타란텔라(Tarantella)’라 불리는 격정적인 춤을 추어야만 완화된다고 믿어졌어요. 이러한 믿음은 중세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지역 전반으로 퍼졌고, 이후 타란텔라는 연인들이 추는 양식화된 춤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쾨스터는 이 영화를 제작하며 무용수들에게 ‘치유의 춤’을 추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아직 밝혀내지 못했거나 혹은 억눌러온 신체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쾨스터의 작업은 일종의 ‘망아(忘我)’ 혹은 ‘탈아(脫我)’의 상태, 즉 자아를 잠시 벗어난 트랜스(trance)의 순간을 포착합니다. 베르그송은 이러한 상태를 단순히 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를 넘어서는 더 높은 차원의 의식’으로 보았어요. 

그에 따르면 이런 순간은 인간이 세계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경험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작품 〈타란티즘〉은 퍼포먼스와 빙의의 경계 어딘가에 놓여 있으며, 보이지 않거나 억압된 존재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통로로서 ‘몸’이라는 매개체를 주목합니다. 이 작품은 몸이 단순한 물리적 그릇이 아니라 의식과 영혼이 드러나는 장(場)임을 보여줍니다. 쾨스터의 〈타란티즘〉은 몸의 떨림과 춤, 그리고 몰입을 통해 자아를 넘어 진리에 닿으려는 예술적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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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데렌 , 마녀의 요람, 1943.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마야 데렌(Maya Deren, 1917–1961)은 미국 실험영화의 선구자이자, 페미니즘 시선과 주체적 시각 언어를 개척한 예술가입니다. 그녀는 단순히 영화감독이라기보다, 시인이자 무용수, 민속학자, 그리고 이론가로서 몸과 리듬,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영화적 표현을 시도한 인물이었어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그녀의 미완성 작품 〈The Witch’s Cradle〉(1943, 『마녀의 요람』, 12분)이 전시되고 있고,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대표작인 〈Meshes of the Afternoon〉(1943, 『오후의 그물망』, 14분)이 상영되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스크린 속에서 몸과 꿈, 시간과 이미지가 반복되고 겹치는데 영상이 무척 시적입니다. 극장의 스크린이 확실히 몰입감을 한층 높여 마야 데렌의 짧은 단편 영상은 시각적 인상이 강렬했습니다. 


<마녀의 요람>과 <오후의 그물망>은 모두 특별한 내러티브 없이, 초현실적 이미지들이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방식으로 표현된 작품입니다. <마녀의 요람>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손을 통해 실을 엮어 미로처럼 거미줄 같은 구조를 만들고, 그 실은 화면을 분할하며 여성과 남성을 감싸 가둡니다. 그 사이로 헤매는 듯한 몽환적인 빛과 그림자가 펼쳐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이 미완성 단편 영화는 마야 데렌이 20대 중반에 제작한 작품으로, 그 시기 그녀의 폭발적인 창의력은 이후 미국 실험영화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녀의 요람>은 유럽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 등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을 미국에 소개한 뉴욕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촬영되었으며, 마야 데렌의 혁신적인 기법과 아이티 부두교, 게슈탈트 심리학 등 폭넓은 관심사가 녹아 있습니다. 

비스듬한 카메라 앵글, 역재생 푸티지, 거울 이미지, 박동하는 심장 모형 등은 오컬트 의식과 초자연적 현상을 담은 몽환적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영화에 출연한 마르셀 뒤샹의 남성 역할 연기는 이 작품이 예술과 마법의 결합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한편, <오후의 그물망> 역시 아방가르드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흑백 무성 실험 단편입니다. 이 영화는 데렌의 자택에서 당시 남편이었던 알렉산더 해미드와 함께 제작되었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설정을 통해 여성의 내면을 심리적으로 잘 드러냅니다. 여성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불분명하게 설정함으로써 분열된 자아를 표현하고, 영화 속 파편적인 오브제, 거울 얼굴의 인물, 초현실적인 영상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는 하나의 꿈이 아니라, 꿈을 꾼다는 행위 자체의 구조에 대한 영화이다.’

- 마야 데렌(Maya De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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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자이, <유령>, 2024/2025.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노무라 자이는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미술학 석사를 마치고, 도쿄 무사시노 대학에서 미술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가까운 가족을 잃은 경험과 1995년 고베 대지진의 충격은 그의 작업 속에 깊이 스며들어, 물질의 영속성과 존재의 불안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령〉은 물질이 천천히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시간과 변화 속에서 존재가 지닌 유한함과 덧없음을 잔잔하게 성찰하게 합니다. 수조 속에서 이미지는 서서히 희미해지고, 물은 정화 과정을 거쳐 다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과정은 ‘갱신(renewal)’과 ‘환생(rebirth)’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 인쇄 장치는 잉크젯 프린터가 물 표면에 고인의 이미지를 새기면, 그것이 곧바로 수조로 흘러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장면은 가족의 죽음 이후 희미해져가는 기억과, 대지진의 폐허 속에서 마주한 무상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유령〉 프로젝트는 전 세계 누구나 웹사이트를 통해 이미지를 업로드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개인의 기억과 슬픔이 어떻게 공적인 공간 속에서 조심스레 공유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관객에게 묻습니다.



인간이 거대한 생명의 근원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체험이 주는 ‘존재 자체의 신성함’, 그것은 종교적 체험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 체험은 비이성적으로 여겨져 불신의 대상이 되곤 하죠. 윌리엄 제임스는 이 점을 비판합니다. 이런 태도는 ‘지성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생각으로 우리의 의식을 편협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우리가 ‘정상적인’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은 무수히 다양한 의식 상태 중 하나에 불과하며, 명상, 꿈, 약물, 신비 체험 등은 그 얇은 경계를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인식이라는 겁니다. 

 

일반적인 의식 상태는 주로 외부 세계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일들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전통에서는 인간의 의식을 밖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돌리라고 말하죠.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심리적 변화나 오해 때문에, 수행은 때로 병리적인 것으로 해석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거든요. 

저 역시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내면의 탐구를 이어간다면, 인간이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더 깊은 초개인적 진리, 다시 말해 존재의 근원적인 차원에 다가갈 가능성을 열게 될 것입니다.

‘종교적, 영적 체험’은 단순히 비이성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형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통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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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도슨트는 매일 오후 1시와 3시에 운영됩니다.


[전시 도슨트 오디오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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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 티켓 예매는 상영 일정 2주 전부터 서울아트시네마 웹사이트에서 열립니다.

https://www.cinematheque.seoul.kr

2025.08.30 13:00 – 2025.11.22 13:00 총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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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아트시네마쪽 정동길을 걸어가다보면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그 건너편 2층에 my choice 정동 카페가 있습니다. 추천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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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서소문동)>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61 (서소문동)

[오시는 길]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10, 11, 12번 출구

버스 172, 472, 600, 602, 7019번 시청, 서소문청사 정류장

주차시설이 협소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합니다.화-목요일 10.00-20.00

금요일 10.00-21.00

주말·공휴일 10.00–19.00

월요일 휴관

무료 입장

  


<낙원상가 325호, 339호, 412호>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28

[오시는 길]

지하철 1, 3,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화-목요일 10.00-20.00

금요일 10.00-21.00

주말·공휴일 10.00–19.00

월요일 휴관

무료 입장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시 중구 정동길 3 경향아트힐 2층(경향신문사)

[오시는 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출구 

월요일 휴관



에디터 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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