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국내 유일의 아시아 문화 주제 복합문화예술기관으로, 2015년 11월 개관 이래 아시아 문화예술의 교류와 창조, 확산을 위한 국제적인 플랫폼 역할을 해왔습니다.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등 다섯 개 원으로 이루어진 ACC에서는 전시뿐 아니라 공연, 교육, 축제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펼쳐집니다. 또한 아시아문화광장, 하늘마당, 열린마당과 같은 야외 공간, 그리고 ‘빛의 숲’을 주제로 한 지상정원은 도심 속 쉼터 같은 휴식 공간으로 쉬어가시면 좋겠습니다.
ACC는 개관 당시에도 이미 료지 이케다의 작품 <test pattern [n°8]>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텍스트, 사운드, 영상, 사진 등 일상 속 데이터를 초당 수백 프레임의 흑백 바코드로 시각화한 작품으로, 관객들은 쏟아지는 이미지와 큰 울림의 전자음에 압도되어 기술 발전이 불러오는 무력감과 혼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시 개최되는 이번 「2025 ACC 포커스: 료지 이케다」 전시는 지난 10년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층 정교해진 알고리즘, 확장된 데이터 스펙트럼, 고도화된 기술을 통해 변화하는 예술과 시대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가 열리고 있는 문화창조원은 아시아의 동시대성을 다루는 융복합 전시가 주로 열리는 공간이에요. 현재 이곳에서는 료지 이케다 전시와 함께 ACC 10주년 기념 특별전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2025. 7. 8 ~ 10. 9), 그리고 동남아시아 항구도시의 문화교류와 삶을 다룬 <몬순으로 열린 세계: 동남아시아의 항구도시>(2024. 1. 30 ~ 2026. 2. 1)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화려한 기술을 보는 자리가 아니라, 예술과 기술이 어떻게 서로를 변화시켜왔는지, 또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참고로, 이 전시는 강렬한 빛, 빠른 영상 전환, 고주파 음향 같은 강렬한 시청각 효과가 포함돼 있습니다. 혹시 빛에 민감하시거나 광과민성 질환, 청각 과민 같은 건강상 특별히 유의가 필요한 분들은 관람하실 때 꼭 주의하세요.

“ 침묵도 소리다. 내 작업에서 나는 소음만 아니라 침묵으로도 작곡한다. ”
– 료지 이케다, 2011, In The Guardian 인터뷰 中
시각과 청각을 넘나드는 사운드와 오디오-비주얼 아트의 선구자, 료지 이케다(Ryoji Ikeda, 1966-)의 작품 재료는 다름 아닌 데이터입니다. 그는 소리와 빛, 수학적 구조와 데이터의 반복을 활용해 인간 인식의 경계를 탐구하고, 기술과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어요. 그의 이런 전자음악과 데이터 실험은 1990년대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사실 1960~70년대는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였죠. 이 시기의 변화는 기존의 전통 예술을 뒤흔들었고, 그 결과 비디오 아트, 옵 아트, 일렉트로닉 뮤직 같은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케다는 1966년 일본 기후현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일본 클럽에서 DJ로 활동했고, 이후 비디오 음악, TV 제작, 설치 예술에도 참여했어요. 특히 1994년에는 멀티미디어 예술 단체인 덤 타입(Dumb Type)에 합류해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공연, 음반 제작, 출판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습니다. 이 단체에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건축가, 수학자 등 여러 분야 사람들이 함께 했고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죠.
어릴 때부터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에 관심을 가졌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지 않았던 탓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컴퓨터가 그의 주된 창작 도구가 되었죠. 2004년 이후에는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케다는 늘 음악의 본질, 즉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것들의 구조적 문제에 집착했는데요. 특히 악보의 규칙과 데이터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강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또한 구체음악(具體音樂, Musique Concrète)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구체음악은 악기나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연 속에 존재하는 소리를 전기적·기계적으로 조작해 만든 음악이에요. 이 장르는 전위 음악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케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백색 잡음(white noise)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연구했습니다.
료지 이케다의 작품을 볼까요?


data.flux [n˚2], 2020 Photo by National Asian Culture Center, 토커바웃아트 제공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LED 스크린에 인체의 DNA 정보를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설치 작업입니다. 화면 속에서는 수많은 정보들이 눈 깜짝할 새에 빠른 속도로 변하고 흘러가죠. 밝은 빛과 함께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정보의 속도, 그리고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는 우리의 감각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 흐름을 따라가 보려고 눈을 굴려보지만, 속도가 워낙 빨라 쉽게 잡히지 않아요. 결국 우리는 그 정보의 흐름에 다가가기 어려운 인간의 한계와 마주하게 됩니다.

critical mass. 2025. 토커바웃아트 제공
이 작품은 약 100㎡ 크기의 바닥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프로젝션 기반의 시청각 설치작품이에요. 보시는 것처럼 바닥 전체에 강렬한 원형의 빛 이미지가 투사되는데, 마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여기에 더해지는 묵직한 전자음은 우리의 감각을 한층 더 자극하죠. 밝고 강렬한 빛과 소리가 마치 감각의 한계를 시험하듯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point of no return. 2018. Photo by National Asian Culture Center
"우리는 소리 속에서 잉태되고 시각적 세계에서 태어난다."
미셸 시옹, <시청-환각의 구성(視-幻覺的杓建)>에서
<point of no return>은 블랙홀 이론과 맞닿아 있는 작업이에요. 료지 이케다는 이 작품을 자신의 작업 중 가장 형이상학적인 작품으로 꼽았다고 하죠.
모든 질량을 가진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바로 만유인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지구처럼 중력이 강하면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생깁니다. 바로 그런 천체를 설명하는 이론이 블랙홀이에요.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 블랙홀이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여겨지고 있죠.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했어요. 이 이론의 중심에는 ‘빛도 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극단적인 시공간의 왜곡 현상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러던 중, 독일의 물리학자 칼 슈바르츠실트가 회전하지 않는 천체에 해당하는 중력장 방정식의 해를 찾아내게 됩니다. 그 결과, 태양 가까이에서는 중력 때문에 빛이 약 2초각 정도 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죠. 듣기만 해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을 관측하면서 실제로 빛이 휘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후 블랙홀은 과학을 넘어 존재론적 상상력까지 자극하면서 예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로지 이케다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블랙홀을 매혹적인 주제로 다뤄왔습니다. 아무리 빠른 빛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고, 모든 것을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블랙홀. <critical mass>와 <point of no return> 두 작품 모두 이 블랙홀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커다란 원이 자리합니다. 이 원은 크기를 달리하며 경계를 만들었다가 사라지고, 서로 흡수되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요. 그렇게 어떤 궤적이 이어지고, 그 궤적은 때로는 빛으로, 때로는 그림자로 변합니다. 여기에 더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묵직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죠. 소리가 직접 우리 몸에 닿는 건 아니지만, 자극적인 기계음은 감각적으로 강한 흔적을 남깁니다.
이케다는 소리를 일종의 ‘영혼’으로 보며, 작품 속에서 ‘백색 소음’을 중요한 재료로 사용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에는 수학과 데이터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요. 이케다는 주관적인 감각 언어를 배제하고, 대신 관객이 그의 우주를 추상적으로 경험하도록 이끕니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생성된 코드와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 그 자체를 넘어선 ‘느낌’을 만들어내죠.
이번 전시에서 이케다는 관객에게 특별히 ‘이렇게 해석하세요’라고 요구, 혹은 유도하지 않습니다. 그저 작품을 직접 느껴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든 데이터의 출처나 기술적 배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압도적인 시청각 경험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마치 감각적으로 세뇌되듯 몰입하게 되는 거죠.

sleeping beauty(π). 2025. 토커바웃아트 제공
이 정육면체 박스의 윗면은 은빛으로 반짝이는데,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수없이 많은 숫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어요. 눈에 띄는 건 바로 3.14195…로 시작하는 파이(π) 값입니다. 거기에 끝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숫자들과 수학 기호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죠. 잘 아시다시피, 파이는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을 나타내는 무리수예요. 소수점 아래 값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안에는 단 한 번의 반복도 없는 초월수가 숨어 있죠. 그래서 파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무한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케다는 그 무한의 숫자와 질서를 이 박스 안에 ‘기록’해 놓은 겁니다.
작품의 제목이 Sleeping Beauty인데, 마치 끝없는 숫자의 수면 속에서 언젠가 깨어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이케다는 이렇게 수학적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반복을 이용해 순수하고도 미니멀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무한에서 오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또 수학의 질서와 추상성에서 안도감과 매력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수학적 정밀성과 미학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숭고함을 바라보게 하죠. 즉, 료지 이케다는 과학을 예술의 언어로 끌어와, 합리성과 논리 속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data verse 1/2/3. 2019-2020. 토커바웃아트 제공
이 작품은 나사(NASA)와 인간 게놈 프로젝트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시각화 작업입니다. 우주의 광활함과 동시에 미시세계의 복잡함까지 보여주는, 이케다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작품은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사,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 인간 게놈 프로젝트 등에서 수집한 우주 관측 자료와 유전자 정보 같은 과학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세 개의 대형 스크린과 고주파 사운드가 함께 어우러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포에서부터 끝없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데이터를 한 자리에서 동시에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exp #1 2020. Photo by National Asian Culture Center
이 작품은 레이저 광선과 움직이는 설치물을 통해 빛과 공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정밀하게 계산된 데이터에 따라 레이저가 기하학적인 패턴을 그려내는데요, 관객은 마치 빛이 만든 가상의 공간 안에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케다는 소리와 빛을 스크린이나 종이 같은 평면이 아니라 3차원 공간 안에 표현함으로써 소리와 빛이 함께 퍼지고, 서로 얽히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이 모든 건 이케다가 기본적으로 ‘본질적인 것’과 ‘데이터의 관계’에 집착하며 탐구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소리를 음악적인 구조로 환원시키고, 백색 소음이나 수학적 기호들을 조합해 코드로 만들어내면서 공간과 우주에 대해 사유합니다. 이케다는 작업에서 항상 ‘아름다움’과 ‘숭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에게 아름다움은 ‘명확한 것, 합리성, 정확성, 단순함, 우아함, 섬세함 같은 것들’입니다. 반대로 숭고란 ‘무한한 것, 극도로 미세하면서도 동시에 광대하고, 결국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또 수학에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수학 속에서 숭고함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미적 경험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는 장인정신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 요소를 바탕으로, 소리와 이미지는 동시에 변환하고 결합합니다. 그의 작업은 데이터를 토대로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몰입적인 예술로 이어지게 되고, 관객은 그 안에서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체험하게 되는 거죠.
다시 묻자면, 앞으로 우리 앞에는 얼마나 더 빠른 속도로 상상도 못한 일들이 찾아와 우리를 바꿔 놓을까요?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할까요?

이 전시는 도슨트가 없습니다.
ACC 안내 앱 다운로드

문의전화 1899-5566
평일 업무시간 09:00 ~ 18:00
예매 업무시간 09:00 ~ 17:00



근처에 1934년에 설립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두번째로 오래된 극장인 광주극장(광주 동구 충장로 46번길 10)이 있습니다.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오래된 극장입니다.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관 및 복합전시 4관
2025.7.10.(목) - 12.28.(일)
(화-일)10:00 - 18:00
(수,토)10:00 - 20:00
* 매주 월요일 휴관
[지하철]
문화전당역에서 하차(5번, 6번 출입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또는 문화전당역
지선수완12, 1187, 518, 석곡87, 송정98, 풍암61, 첨단95, 금남55, 419, 금남57
급행첨단09, 순환01, 진월07, 풍암06
간선지원45, 금호36, 봉선37, 봉선27, 일곡28, 지원15, 운림35, 진월17, 문흥39
[고속터미널]
버스 : 첨단09, 금호36, 518, 지원151
[광주공항]
지하철 : 문화전당역 하차
[광주역 / 송정역]
광주역(버스) : 금남57, 금남58, 지원151, 송정98, 518, 1187, 금남55
송정역(지하철) : 문화전당역 하차
에디터 탁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국내 유일의 아시아 문화 주제 복합문화예술기관으로, 2015년 11월 개관 이래 아시아 문화예술의 교류와 창조, 확산을 위한 국제적인 플랫폼 역할을 해왔습니다.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등 다섯 개 원으로 이루어진 ACC에서는 전시뿐 아니라 공연, 교육, 축제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펼쳐집니다. 또한 아시아문화광장, 하늘마당, 열린마당과 같은 야외 공간, 그리고 ‘빛의 숲’을 주제로 한 지상정원은 도심 속 쉼터 같은 휴식 공간으로 쉬어가시면 좋겠습니다.
ACC는 개관 당시에도 이미 료지 이케다의 작품 <test pattern [n°8]>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텍스트, 사운드, 영상, 사진 등 일상 속 데이터를 초당 수백 프레임의 흑백 바코드로 시각화한 작품으로, 관객들은 쏟아지는 이미지와 큰 울림의 전자음에 압도되어 기술 발전이 불러오는 무력감과 혼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시 개최되는 이번 「2025 ACC 포커스: 료지 이케다」 전시는 지난 10년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층 정교해진 알고리즘, 확장된 데이터 스펙트럼, 고도화된 기술을 통해 변화하는 예술과 시대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가 열리고 있는 문화창조원은 아시아의 동시대성을 다루는 융복합 전시가 주로 열리는 공간이에요. 현재 이곳에서는 료지 이케다 전시와 함께 ACC 10주년 기념 특별전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2025. 7. 8 ~ 10. 9), 그리고 동남아시아 항구도시의 문화교류와 삶을 다룬 <몬순으로 열린 세계: 동남아시아의 항구도시>(2024. 1. 30 ~ 2026. 2. 1)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화려한 기술을 보는 자리가 아니라, 예술과 기술이 어떻게 서로를 변화시켜왔는지, 또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참고로, 이 전시는 강렬한 빛, 빠른 영상 전환, 고주파 음향 같은 강렬한 시청각 효과가 포함돼 있습니다. 혹시 빛에 민감하시거나 광과민성 질환, 청각 과민 같은 건강상 특별히 유의가 필요한 분들은 관람하실 때 꼭 주의하세요.
시각과 청각을 넘나드는 사운드와 오디오-비주얼 아트의 선구자, 료지 이케다(Ryoji Ikeda, 1966-)의 작품 재료는 다름 아닌 데이터입니다. 그는 소리와 빛, 수학적 구조와 데이터의 반복을 활용해 인간 인식의 경계를 탐구하고, 기술과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어요. 그의 이런 전자음악과 데이터 실험은 1990년대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사실 1960~70년대는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였죠. 이 시기의 변화는 기존의 전통 예술을 뒤흔들었고, 그 결과 비디오 아트, 옵 아트, 일렉트로닉 뮤직 같은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케다는 1966년 일본 기후현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일본 클럽에서 DJ로 활동했고, 이후 비디오 음악, TV 제작, 설치 예술에도 참여했어요. 특히 1994년에는 멀티미디어 예술 단체인 덤 타입(Dumb Type)에 합류해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공연, 음반 제작, 출판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습니다. 이 단체에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건축가, 수학자 등 여러 분야 사람들이 함께 했고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죠.
어릴 때부터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에 관심을 가졌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지 않았던 탓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컴퓨터가 그의 주된 창작 도구가 되었죠. 2004년 이후에는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케다는 늘 음악의 본질, 즉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것들의 구조적 문제에 집착했는데요. 특히 악보의 규칙과 데이터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강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또한 구체음악(具體音樂, Musique Concrète)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구체음악은 악기나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연 속에 존재하는 소리를 전기적·기계적으로 조작해 만든 음악이에요. 이 장르는 전위 음악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케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백색 잡음(white noise)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연구했습니다.
료지 이케다의 작품을 볼까요?
data.flux [n˚2], 2020 Photo by National Asian Culture Center, 토커바웃아트 제공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LED 스크린에 인체의 DNA 정보를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설치 작업입니다. 화면 속에서는 수많은 정보들이 눈 깜짝할 새에 빠른 속도로 변하고 흘러가죠. 밝은 빛과 함께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정보의 속도, 그리고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는 우리의 감각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 흐름을 따라가 보려고 눈을 굴려보지만, 속도가 워낙 빨라 쉽게 잡히지 않아요. 결국 우리는 그 정보의 흐름에 다가가기 어려운 인간의 한계와 마주하게 됩니다.
critical mass. 2025. 토커바웃아트 제공
이 작품은 약 100㎡ 크기의 바닥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프로젝션 기반의 시청각 설치작품이에요. 보시는 것처럼 바닥 전체에 강렬한 원형의 빛 이미지가 투사되는데, 마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여기에 더해지는 묵직한 전자음은 우리의 감각을 한층 더 자극하죠. 밝고 강렬한 빛과 소리가 마치 감각의 한계를 시험하듯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point of no return. 2018. Photo by National Asian Culture Center
<point of no return>은 블랙홀 이론과 맞닿아 있는 작업이에요. 료지 이케다는 이 작품을 자신의 작업 중 가장 형이상학적인 작품으로 꼽았다고 하죠.
모든 질량을 가진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바로 만유인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지구처럼 중력이 강하면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생깁니다. 바로 그런 천체를 설명하는 이론이 블랙홀이에요.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 블랙홀이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여겨지고 있죠.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했어요. 이 이론의 중심에는 ‘빛도 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극단적인 시공간의 왜곡 현상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러던 중, 독일의 물리학자 칼 슈바르츠실트가 회전하지 않는 천체에 해당하는 중력장 방정식의 해를 찾아내게 됩니다. 그 결과, 태양 가까이에서는 중력 때문에 빛이 약 2초각 정도 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죠. 듣기만 해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을 관측하면서 실제로 빛이 휘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후 블랙홀은 과학을 넘어 존재론적 상상력까지 자극하면서 예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로지 이케다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블랙홀을 매혹적인 주제로 다뤄왔습니다. 아무리 빠른 빛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고, 모든 것을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블랙홀. <critical mass>와 <point of no return> 두 작품 모두 이 블랙홀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커다란 원이 자리합니다. 이 원은 크기를 달리하며 경계를 만들었다가 사라지고, 서로 흡수되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요. 그렇게 어떤 궤적이 이어지고, 그 궤적은 때로는 빛으로, 때로는 그림자로 변합니다. 여기에 더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묵직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죠. 소리가 직접 우리 몸에 닿는 건 아니지만, 자극적인 기계음은 감각적으로 강한 흔적을 남깁니다.
이케다는 소리를 일종의 ‘영혼’으로 보며, 작품 속에서 ‘백색 소음’을 중요한 재료로 사용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에는 수학과 데이터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요. 이케다는 주관적인 감각 언어를 배제하고, 대신 관객이 그의 우주를 추상적으로 경험하도록 이끕니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생성된 코드와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 그 자체를 넘어선 ‘느낌’을 만들어내죠.
이번 전시에서 이케다는 관객에게 특별히 ‘이렇게 해석하세요’라고 요구, 혹은 유도하지 않습니다. 그저 작품을 직접 느껴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든 데이터의 출처나 기술적 배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압도적인 시청각 경험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마치 감각적으로 세뇌되듯 몰입하게 되는 거죠.
sleeping beauty(π). 2025. 토커바웃아트 제공
이 정육면체 박스의 윗면은 은빛으로 반짝이는데,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수없이 많은 숫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어요. 눈에 띄는 건 바로 3.14195…로 시작하는 파이(π) 값입니다. 거기에 끝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숫자들과 수학 기호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죠. 잘 아시다시피, 파이는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을 나타내는 무리수예요. 소수점 아래 값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안에는 단 한 번의 반복도 없는 초월수가 숨어 있죠. 그래서 파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무한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케다는 그 무한의 숫자와 질서를 이 박스 안에 ‘기록’해 놓은 겁니다.
작품의 제목이 Sleeping Beauty인데, 마치 끝없는 숫자의 수면 속에서 언젠가 깨어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이케다는 이렇게 수학적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반복을 이용해 순수하고도 미니멀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무한에서 오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또 수학의 질서와 추상성에서 안도감과 매력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수학적 정밀성과 미학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숭고함을 바라보게 하죠. 즉, 료지 이케다는 과학을 예술의 언어로 끌어와, 합리성과 논리 속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data verse 1/2/3. 2019-2020. 토커바웃아트 제공
이 작품은 나사(NASA)와 인간 게놈 프로젝트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시각화 작업입니다. 우주의 광활함과 동시에 미시세계의 복잡함까지 보여주는, 이케다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작품은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사,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 인간 게놈 프로젝트 등에서 수집한 우주 관측 자료와 유전자 정보 같은 과학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세 개의 대형 스크린과 고주파 사운드가 함께 어우러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포에서부터 끝없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데이터를 한 자리에서 동시에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exp #1 2020. Photo by National Asian Culture Center
이 작품은 레이저 광선과 움직이는 설치물을 통해 빛과 공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정밀하게 계산된 데이터에 따라 레이저가 기하학적인 패턴을 그려내는데요, 관객은 마치 빛이 만든 가상의 공간 안에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케다는 소리와 빛을 스크린이나 종이 같은 평면이 아니라 3차원 공간 안에 표현함으로써 소리와 빛이 함께 퍼지고, 서로 얽히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이 모든 건 이케다가 기본적으로 ‘본질적인 것’과 ‘데이터의 관계’에 집착하며 탐구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소리를 음악적인 구조로 환원시키고, 백색 소음이나 수학적 기호들을 조합해 코드로 만들어내면서 공간과 우주에 대해 사유합니다. 이케다는 작업에서 항상 ‘아름다움’과 ‘숭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에게 아름다움은 ‘명확한 것, 합리성, 정확성, 단순함, 우아함, 섬세함 같은 것들’입니다. 반대로 숭고란 ‘무한한 것, 극도로 미세하면서도 동시에 광대하고, 결국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또 수학에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수학 속에서 숭고함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미적 경험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는 장인정신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 요소를 바탕으로, 소리와 이미지는 동시에 변환하고 결합합니다. 그의 작업은 데이터를 토대로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몰입적인 예술로 이어지게 되고, 관객은 그 안에서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체험하게 되는 거죠.
다시 묻자면, 앞으로 우리 앞에는 얼마나 더 빠른 속도로 상상도 못한 일들이 찾아와 우리를 바꿔 놓을까요?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할까요?
이 전시는 도슨트가 없습니다.
ACC 안내 앱 다운로드
문의전화 1899-5566
평일 업무시간 09:00 ~ 18:00
예매 업무시간 09:00 ~ 17:00
근처에 1934년에 설립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두번째로 오래된 극장인 광주극장(광주 동구 충장로 46번길 10)이 있습니다.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오래된 극장입니다.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관 및 복합전시 4관
2025.7.10.(목) - 12.28.(일)
(화-일)10:00 - 18:00
(수,토)10:00 - 20:00
* 매주 월요일 휴관
[지하철]
문화전당역에서 하차(5번, 6번 출입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또는 문화전당역
지선수완12, 1187, 518, 석곡87, 송정98, 풍암61, 첨단95, 금남55, 419, 금남57
급행첨단09, 순환01, 진월07, 풍암06
간선지원45, 금호36, 봉선37, 봉선27, 일곡28, 지원15, 운림35, 진월17, 문흥39
[고속터미널]
버스 : 첨단09, 금호36, 518, 지원151
[광주공항]
지하철 : 문화전당역 하차
[광주역 / 송정역]
광주역(버스) : 금남57, 금남58, 지원151, 송정98, 518, 1187, 금남55
송정역(지하철) : 문화전당역 하차
에디터 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