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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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전경


세상을 살다보면 점점 ‘고유한 나’의 존재를 잃어가는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로서 살아가기보다는 직장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사회에서의 나로서, 때로는 부모로, 자식으로, 친구로, 직장동료로서 다양한 역할에 맞춘 ‘나’로 살아갑니다. 잘하는 것보다 잘하도록 기대되는 것을,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만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모습보다는 보여지길 원하는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게 되죠.


그러다보면 우리는 우리의 ‘오리지널리티’를 가끔 잊고 살아갑니다. 늘 다양한 역할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며, 본래의 나는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잊고 심지어 그것이 중요하지 않게 되기도 하죠.


오늘 소개할 전시, 유동룡 미술관의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 이타미 준≫은 그러한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전시입니다. 일본에서 나고 살았지만, 평생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한국의 아름다움와 정서를 건축과 공간으로 표현했던 재일 건축가. 경계의 지점에서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 헤맸던 그의 여정을 이번 전시를 통해 함께 하며, 각자의 본질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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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준 이미지 (출처: 유동룡 미술관)


이타미준은 누구?

이타미 준(유동룡, ITAMI JUN, 1935-2011)은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 평생을 한국 국적을 유지했지만 필연적으로 한국과 일본이라는 경계 위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유동룡이라는 본명 외에, 그가 만든 ‘이타미 준’이라는 활동명은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냅니다. 이 이름은 출발과 도착이라는 양극단의 상황이 공존하는 공항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그중에서도 한국땅을 밟기 위해 거쳤던 오사카의 ‘이타미 공항’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 필명을 만들게 된 흥미로운 일화도 있는데요. 건축가로서 데뷔하던 시절, 일본의 한 잡지에 자신의 건축 작품을 소개하려 했을 당시 일본의 인쇄 시스템에는 그의 성인 ‘무송 유(庾)’의 활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활동명을 고민하다가 이타미 공항에서 ‘이타미’를, 동료 작곡가 길옥윤의 예명에서 ‘준’을 따오게 되면서 지금의 ‘이타미 준’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번 전시 제목의 뜻은?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이번 전시의 제목이 독특하죠? 이는 유동룡 건축가가 자신의 아뜰리에 ‘먹의 집’을 지칭했던 문장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공간을 ‘닫힌 어둠이 아니라 미묘하게 열린 검은 상자’라고 표현했죠. 그에게 있어 이곳은 몰입의 공간이자, 어둠과 밝음,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가며 어렴풋한 빛을 추구하는 자신을 표현한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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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의 공간 전경


유동룡미술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검은 상자’를 연상케 하는 공간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너른 통창 너머로는 제주 고유의 숲인 곶자왈이 펼쳐져 있고, 그 자연의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말 그대로 정화시켜 줍니다. 유동룡 건축가가 가장 사랑했던 색인 검정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은 ‘먹의 공간’이라 불립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은은한 향도 느껴지는데요. 이는 유동룡 건축가의 서재에서 나던 먹향과 오래된 고서에서 영감을 받은 향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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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의 공간 세부


이 곳은 [테마 1. 한국과 일본]으로, 이타미 준이 영감을 받았던 조선 건축과 오랜 시간 수집했던 조선 백자와 민화 등을 소개합니다. 한쪽 벽면의 책장에는 한국의 도자기와 책이 빼곡히 놓여 있어, 마치 민화 속 ‘책가도’를 연상시킵니다.


실제 그의 서재를 옮겨놓은 듯한 이 공간 한 켠에는 이타미 준의 수첩, 교류했던 예술가들의 사진, 그리고 그가 영감을 받았던 고서와 조선 백자가 놓여 있습니다.

이 사색의 공간에서 우리는 제주 자연을 바라보며, 이타미 준처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보았는데요.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먹의 향기 속에서, 고요한 그의 서재에 앉아 나를 들여다보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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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 2. 건축과 회화


윗층으로 올라가면 전시가 이어집니다. 한번 올라가볼까요?


이곳, [테마 2. 건축과 회화]에서는 건축과 예술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이타미 준의 대표 건축 작품과 회화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습니다.


대표 건축물들은 미니어처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곽인식, 김창열, 이우환 등 한국의 대표 화가들과 교류했던 만큼, 그의 회화 작품들도 함께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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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작품들: 방주교회, 수 미술관, 풍 미술관, 석 미술관


이 곳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방주교회를 비롯해, ‘수풍석 뮤지엄’으로 불리는 수·풍·석 미술관도 전시되어 있으며, 포도처럼 주렁주렁 열린 형태의 ‘포도호텔’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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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의 집 (1975)


특히 ‘먹의 집’은 1975년 도쿄 롯폰기에 설계한 자신의 아틀리에로, 조선의 사랑채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설계한 건물입니다. 1층은 온통 검정으로 칠해져 ‘검은 사랑’, 2층은 하얗게 칠해져 ‘하얀 사랑’이라 불렸습니다.

이 검정과 하양의 공간은 각각 어둠과 빛을 형상화하며, 그가 빛과 어둠이라는 양극의 경계지점에 살아가는 경계인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이 공간을 검은 상자라고 표현했는데요. 좀처럼 자신을 빛 속으로 놓아주지 않는, 어쩌면 태생적이고 필연적인 자신의 정체성 속에서도 끊임없이 한줄기 빛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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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3. 글과 드로잉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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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 3. 글과 드로잉 (뒤)


전시의 마지막 테마인 [테마 3. 글과 드로잉]에서는 이타미 준이 남긴 수많은 글과 드로잉 작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신체에서 비롯된 감각을 중시하며, 아날로그적 표현 수단인 손글씨와 드로잉을 꾸준히 실천해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작업 수단을 넘어서, 삶을 조율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그의 건축 드로잉과 함께 각 작업에 대한 짧은 글귀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전시물 앞면에는 글이, 뒷면에는 그림이 있어 관점에 따라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도 이 공간만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 당신의 고요를 찾고 싶다면, 유동룡미술관으로


우리는 어쩌면 매일같이 ‘경계’에 서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딸, 아들이자 동료이며 친구로서, 때로는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흘러가듯 하루를 살아내죠. 그 속에서 문득, 본래의 나를 떠올리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유동룡미술관은 고요한 빛처럼, 당신의 마음을 잠시 멈춰 세우는 공간이 되어줄 것입니다.

경계에서 시작된 이타미 준의 여정을 따라 걷다 보면, 잊고 있던 당신의 ‘오리지널리티’도 함께 마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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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룡 미술관 홈페이지에 가시면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 이타미 준]展 오디오도슨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오디오 도슨트 링크(클릭)

 

이타미 준의 딸이자 유동룡미술관 관장인 유이화 건축가가 들려드립니다.

오디오도슨트를 통해 몰입감 있는 전시를 경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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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라운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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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노래 티세트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에 집중하면, 형상이 살아난다.”

- 이타미 준


유동룡 미술관 입장권에는 티 라운지 이용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시그니처 티, ‘바람의 노래’는 건축가 유동룡이 제2의 고향으로 삼았던 제주를 담아낸 블렌딩 티입니다.

제주의 유기농 녹차를 베이스로, 청보리순과 조릿대, 그리고 박하를 더해 섬세한 풍미를 완성했죠. 유동룡이 제주의 자연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를 차 한 잔에 고스란히 담고자 한 그 마음이 전해집니다.

미술관을 감싸고 있는 곶자왈의 야생 숲과, 착공 당시 우연히 발견된 용암의 흐름이 새겨진 바위 ‘빌레’까지. 제주의 자연을 그대로 살려낸 이 공간에서 ‘바람의 노래’를 음미해보세요.

차의 맛과 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유동룡이 바라본 제주의 바람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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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 유동룡 미술관 (제주 제주시 용금로 906-10 유동룡 미술관)


[전시기간 및 영업시간]

2025년 4월 15일(화)~ 2026년 3월 29일(일)

화~목 10:00~18:00 (입장마감 17시)

1월 1일 휴관, 미취학 아동 입장 제한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30분 단위로 정시 입장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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