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
이번에 국내에 엄청난 작품이 들어왔어요. 물감을 흩뿌리는 ‘액션 페인팅’ 기법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의 작품 <수평적 구조(Horizontal Composition, 1949)>가 바로 그것이죠. 전시 기획사에 따르면 현재 이 작품의 가치는 2,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된다고 하는데, 이 숫자는 단순한 값어치를 넘어 잭슨 폴록이 현대미술에 남긴 혁신적인 유산과 상징성을 나타냅니다.
이번 전시 ≪뉴욕의 거장들-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은 잭슨폴록 외 마크 로스코, 리 크레이스너, 재스퍼 존스, 바넷 뉴먼, 로버트 마더웰, 솔 르윗 등 동시대에 활동했던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세상과 사람들의 상처를 예술로 치유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명작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 보세요!

전시는 이번 전시는 ‘뉴욕 유대인 박물관’, ‘폴록-크레이스너 재단’, ‘이스라엘박물관’이 엄선한 35점의 소장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작품 수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모든 작품이 미술의 역사 속 유의미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보니, 전혀 부족하거나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만, 미술사를 잘 모르시는 분들, 그들의 이름을 잘 들어보지 못하셨을 분들은 작품 수가 적어서 전시 규모에 아쉬움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트 기사를 읽어보시고, 조금이나마 감상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잭슨 폴록, <수평적 구조(Horizontal Composition)>, ca.1949

잭슨 폴록, <수평적 구조(Horizontal Composition)>, ca.1949 (노원문화재단 제공)
제가 첫 번째로 추천드리는 작품은 잭슨 폴록의 <수평적 구조(Horizontal Composition)>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그 가치가 무려 2,0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하죠. 사실 미술 시장에서의 작품 가격과 예술로서 가지는 작품의 내재적 가치가 항상 상응하지는 않기에, 개인적으로 저는 예술작품에 금전적 가치를 매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러나 고가의 가격이 책정된 작품은 미술사적으로 그 의의가 깊거나, 혹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일 가능성이 크기에, 이번 전시에서 추천드릴만한 작품이 되겠습니다.
잭슨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미국 중서부의 와이오밍주 농가에서 태어난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어요. 일찍이 화가로서 성공하고 명성을 떨쳤지만 그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영향을 받아 일평생을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 결국 44세의 젊은 나이에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하게 되죠.
혼란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그 당시는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 혼란기였습니다. 1,2차 세계 대전이 휩쓸고 난 후,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 더 이상 과거 예술의 형태로는 세상의 그 무엇도 표현할 수 없었기에 예술가들은 예술의 의미를 다시금 고찰해야 했습니다.
또한 유럽이 전쟁의 피해로 복구에 여념이 없을 당시, 서양 미술의 중심지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면서 1940년대 뉴욕은 명실상부한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됩니다. 전쟁의 참상을 비극적으로 인식하던 때, 시각예술은 예술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이전의 관습과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실험주의적 예술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뉴욕의 젊은 화가들은 개인의 감정과 본능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창조적 과정 자체를 중요시했는데, 이것이 폴록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가 태동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미술 규범을 벗어나 자유로운 색상, 질감, 선을 사용하여 내면의 감정을 강조했는데, 이 자유로운 표현 방식은 오늘날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죠.

잭슨폴록 사진
1945년 말, 잭슨 폴록은 뉴욕 아파트에서 세 시간 떨어진 롱아일랜드 스프링스의 온수도, 난방도 없는 작은 농가로 이사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엔 근처 헛간을 스튜디오로 개조해 작업을 시작하죠. 대형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송진으로 희석한 페인트를 사용해 굳어버린 붓, 팔레트와 나이프, 나뭇가지를 사용해 페인트를 뿌리고 흘리며 캔버스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역동적인 몸의 움직임이 담긴 붓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의 그림을 보고 꿈틀거리는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도, 또 누군가는 형상이 구체적이지 않은, 자국만 남아버린 그림 속에서 불안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그의 그림을 보며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고달팠을까 감정 이입을 하게 되었어요.
알코올 중독과 정신적 혼란으로 정신분석가에게 심리치료를 받았던 폴록은 치료 시간에도 취한 모습으로 나타나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에서 표출된 그의 그림을 분석해 심리치료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해요. 놀랍게도 폴록의 심리치료를 맡았던 조셉 헨더슨(Dr. Joseph Henderson)에 의하면 액션페인팅을 시작하고 난 후 그는 잠깐이나마 술을 끊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1951년 이후 블랙 페인팅으로 제작 기법을 변경하면서 다시 알코올 중독과 불안정한 생활로 돌아가고, 결국 음주 운전으로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요.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새로운 화파를 만든 그의 작품은, 어쩌면 집안 내력이었던 알코올 중독 증세, 그리고 우울감과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려야만했던 생을 향한 마지막 꿈틀거림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뉴욕 한스 호프만 스튜디오에서 이젤 앞에 서 있는 리 크레이스너, c. 1930
(출처: 박주원. "추상표현주의 맥락 속 리 크레이스너(Lee Krasner) 작업에 나타난 여성성의 표상." 국내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2023. 서울)
폴록의 아내이자 조력자였던 리 크레이스너 (Lee krasner, 1908-1984)는 뉴욕화파 중 몇 안되는 여성화가 중 한 명입니다. 1908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뉴욕 미술 교육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녀는, 사실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에서 크게 유행하기 이전인 1930년대부터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폴록과의 결혼 이후 그의 명성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945년, 폴록과 결혼한 그녀는 본인도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보다 폴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변덕스럽고 은둔적인 폴록의 곁을 지키며 그의 경력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폴록의 사망 이후에도 그녀는 말년인 1980년대까지 그림 작업을 놓지 않았고, 최근에 들어서야 미술계에서 남성에 가려졌던 여성 화가들이 재조명되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리 크레이스너, <무제 Untitled>, 1948

리 크레이스너, <무제 Untitled>, 1948 (노원문화재단 제공)
폴록의 그림에 비해 비교적 뚜렷한 형상이 보이는 이 작품은 히브리어의 알파벳 문자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일로, 그녀는 이 작품을 포함해 1946년부터 시작한 일련의 새로운 작품들을 ‘작은 이미지 (Little Image)' 라고 불렀습니다.
과거 피카소의 큐비즘적 특징이나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특징에서 작품적 영향을 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1945년 폴록과의 결혼 이후 그녀의 작품에는 드리핑 기법과 같은 폴록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녀는 이 ‘작은 이미지’ 시리즈를 이젤이 아닌 테이블 위에 캔버스를 평평하게 놓고 필요한 효과가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재료를 바르거나 부었습니다. 1950년까지 4년이라는 시간동안 크레이스너는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31점이나 만들다고 합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시리즈를 폴록의 작품과 비교해 크기가 작고, 장식적이며 여성들의 패치워크나 퀼트가 연상되는 ‘여성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폴록보다도 먼저 뉴욕 미술계에 자리를 잡았던 화가로서, 자신의 작업 활동은 축소하고 남편을 뉴욕 미술 커뮤니티에 소개하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줬고, 부부가 작업하며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기에 현재 그녀의 작품적 가치와 폴록에 끼친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평가됩니다.
제가 소개해드린 두 예술가 외에도 마크 로스코, 재스퍼 존스, 솔 르윗 등 당시 뉴욕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보실 수 있으니, 이번 전시 놓치지 말고 꼭 관람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이번 전시는 큐알 코드 스캔을 통해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 가능합니다. 화요일과 목요일 11시와 14시, 토요일과 일요일 11시, 14시, 16시에는 전문 해설가의 도슨트 투어가 진행됩니다.
(자세한 해설 스케줄은 여기를 클릭하여 참고해 주세요.)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대중교통으로 20분, 자동차로 10분,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공간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번 전시를 관람하러 가신다면 이 두 곳을 연계해 함께 보고 오시는 것은 어떨까요?

[주소]
노원문화예술회관 노원아트뮤지엄 (서울시 노원구 중계로 181)
[관람시간]
화~일요일 10:00~19:00 (매주 월요일 휴관, 공휴일 정상 운영)
[오시는 길]
[대중교통]
지하철 이용시,
• 7호선 하계역 3번 출구 → 1141번 버스(노원문화예술회관 하차)
• 7호선 중계역 2번 출구 → 1140번 버스(노원문화예술회관 하차) → 1135번 버스(중계1동 주민센터 하차 후 도보)
• 4호선, 7호선 노원역 1번 출구 → 1142번 버스(은행사거리 하차 후 도보)
• 4호선 상계역 4번 출구 → 1143번, 1140번 버스(노원문화예술회관 하차) → 1142번, 1224번 버스(은행사거리 하차 후 도보)
버스 이용시,
• 지선1140번(인덕대 + 중계동) → 불암초교(하차)
• 지선1141번(석계역 중계본동) → 불암초교(하차)
• 지선1143번(수락산역 중계본동) → 불암초교(하차)
• 지선1131번(석계역 〉 문화예술회관) → 불암초교(하차)
• 지선1224번(청량리 〉 상계4동) → 은행사거리(하차 후 도보)
• 지선1142번(창동역 〉 중계본동) → 은행사거리(하차 후 도보)
• 지선1135번(석계역 은행사거리) → 중계1동사무소(하차 후 도보)
자가용 이용시
• 통일로 중계역에서 우회전 → 을지초등학교에서 우회전 → 직진
• 노원길로 직진하여 상명여고에서 좌회전 → 을지 초등학교에서 우회전 → 직진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여 참고해 주세요.)
박수현 에디터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
이번에 국내에 엄청난 작품이 들어왔어요. 물감을 흩뿌리는 ‘액션 페인팅’ 기법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의 작품 <수평적 구조(Horizontal Composition, 1949)>가 바로 그것이죠. 전시 기획사에 따르면 현재 이 작품의 가치는 2,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된다고 하는데, 이 숫자는 단순한 값어치를 넘어 잭슨 폴록이 현대미술에 남긴 혁신적인 유산과 상징성을 나타냅니다.
이번 전시 ≪뉴욕의 거장들-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은 잭슨폴록 외 마크 로스코, 리 크레이스너, 재스퍼 존스, 바넷 뉴먼, 로버트 마더웰, 솔 르윗 등 동시대에 활동했던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세상과 사람들의 상처를 예술로 치유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명작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 보세요!
전시는 이번 전시는 ‘뉴욕 유대인 박물관’, ‘폴록-크레이스너 재단’, ‘이스라엘박물관’이 엄선한 35점의 소장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작품 수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모든 작품이 미술의 역사 속 유의미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보니, 전혀 부족하거나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만, 미술사를 잘 모르시는 분들, 그들의 이름을 잘 들어보지 못하셨을 분들은 작품 수가 적어서 전시 규모에 아쉬움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트 기사를 읽어보시고, 조금이나마 감상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잭슨 폴록, <수평적 구조(Horizontal Composition)>, ca.1949
잭슨 폴록, <수평적 구조(Horizontal Composition)>, ca.1949 (노원문화재단 제공)
제가 첫 번째로 추천드리는 작품은 잭슨 폴록의 <수평적 구조(Horizontal Composition)>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그 가치가 무려 2,0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하죠. 사실 미술 시장에서의 작품 가격과 예술로서 가지는 작품의 내재적 가치가 항상 상응하지는 않기에, 개인적으로 저는 예술작품에 금전적 가치를 매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러나 고가의 가격이 책정된 작품은 미술사적으로 그 의의가 깊거나, 혹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일 가능성이 크기에, 이번 전시에서 추천드릴만한 작품이 되겠습니다.
잭슨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미국 중서부의 와이오밍주 농가에서 태어난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어요. 일찍이 화가로서 성공하고 명성을 떨쳤지만 그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영향을 받아 일평생을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 결국 44세의 젊은 나이에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하게 되죠.
혼란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그 당시는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 혼란기였습니다. 1,2차 세계 대전이 휩쓸고 난 후,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 더 이상 과거 예술의 형태로는 세상의 그 무엇도 표현할 수 없었기에 예술가들은 예술의 의미를 다시금 고찰해야 했습니다.
또한 유럽이 전쟁의 피해로 복구에 여념이 없을 당시, 서양 미술의 중심지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면서 1940년대 뉴욕은 명실상부한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됩니다. 전쟁의 참상을 비극적으로 인식하던 때, 시각예술은 예술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이전의 관습과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실험주의적 예술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뉴욕의 젊은 화가들은 개인의 감정과 본능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창조적 과정 자체를 중요시했는데, 이것이 폴록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가 태동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미술 규범을 벗어나 자유로운 색상, 질감, 선을 사용하여 내면의 감정을 강조했는데, 이 자유로운 표현 방식은 오늘날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죠.
잭슨폴록 사진
1945년 말, 잭슨 폴록은 뉴욕 아파트에서 세 시간 떨어진 롱아일랜드 스프링스의 온수도, 난방도 없는 작은 농가로 이사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엔 근처 헛간을 스튜디오로 개조해 작업을 시작하죠. 대형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송진으로 희석한 페인트를 사용해 굳어버린 붓, 팔레트와 나이프, 나뭇가지를 사용해 페인트를 뿌리고 흘리며 캔버스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역동적인 몸의 움직임이 담긴 붓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의 그림을 보고 꿈틀거리는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도, 또 누군가는 형상이 구체적이지 않은, 자국만 남아버린 그림 속에서 불안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그의 그림을 보며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고달팠을까 감정 이입을 하게 되었어요.
알코올 중독과 정신적 혼란으로 정신분석가에게 심리치료를 받았던 폴록은 치료 시간에도 취한 모습으로 나타나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에서 표출된 그의 그림을 분석해 심리치료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해요. 놀랍게도 폴록의 심리치료를 맡았던 조셉 헨더슨(Dr. Joseph Henderson)에 의하면 액션페인팅을 시작하고 난 후 그는 잠깐이나마 술을 끊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1951년 이후 블랙 페인팅으로 제작 기법을 변경하면서 다시 알코올 중독과 불안정한 생활로 돌아가고, 결국 음주 운전으로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요.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새로운 화파를 만든 그의 작품은, 어쩌면 집안 내력이었던 알코올 중독 증세, 그리고 우울감과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려야만했던 생을 향한 마지막 꿈틀거림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뉴욕 한스 호프만 스튜디오에서 이젤 앞에 서 있는 리 크레이스너, c. 1930
(출처: 박주원. "추상표현주의 맥락 속 리 크레이스너(Lee Krasner) 작업에 나타난 여성성의 표상." 국내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2023. 서울)
폴록의 아내이자 조력자였던 리 크레이스너 (Lee krasner, 1908-1984)는 뉴욕화파 중 몇 안되는 여성화가 중 한 명입니다. 1908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뉴욕 미술 교육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녀는, 사실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에서 크게 유행하기 이전인 1930년대부터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폴록과의 결혼 이후 그의 명성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945년, 폴록과 결혼한 그녀는 본인도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보다 폴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변덕스럽고 은둔적인 폴록의 곁을 지키며 그의 경력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폴록의 사망 이후에도 그녀는 말년인 1980년대까지 그림 작업을 놓지 않았고, 최근에 들어서야 미술계에서 남성에 가려졌던 여성 화가들이 재조명되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리 크레이스너, <무제 Untitled>, 1948
리 크레이스너, <무제 Untitled>, 1948 (노원문화재단 제공)
폴록의 그림에 비해 비교적 뚜렷한 형상이 보이는 이 작품은 히브리어의 알파벳 문자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일로, 그녀는 이 작품을 포함해 1946년부터 시작한 일련의 새로운 작품들을 ‘작은 이미지 (Little Image)' 라고 불렀습니다.
과거 피카소의 큐비즘적 특징이나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특징에서 작품적 영향을 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1945년 폴록과의 결혼 이후 그녀의 작품에는 드리핑 기법과 같은 폴록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녀는 이 ‘작은 이미지’ 시리즈를 이젤이 아닌 테이블 위에 캔버스를 평평하게 놓고 필요한 효과가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재료를 바르거나 부었습니다. 1950년까지 4년이라는 시간동안 크레이스너는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31점이나 만들다고 합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시리즈를 폴록의 작품과 비교해 크기가 작고, 장식적이며 여성들의 패치워크나 퀼트가 연상되는 ‘여성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폴록보다도 먼저 뉴욕 미술계에 자리를 잡았던 화가로서, 자신의 작업 활동은 축소하고 남편을 뉴욕 미술 커뮤니티에 소개하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줬고, 부부가 작업하며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기에 현재 그녀의 작품적 가치와 폴록에 끼친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평가됩니다.
제가 소개해드린 두 예술가 외에도 마크 로스코, 재스퍼 존스, 솔 르윗 등 당시 뉴욕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보실 수 있으니, 이번 전시 놓치지 말고 꼭 관람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이번 전시는 큐알 코드 스캔을 통해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 가능합니다. 화요일과 목요일 11시와 14시, 토요일과 일요일 11시, 14시, 16시에는 전문 해설가의 도슨트 투어가 진행됩니다.
(자세한 해설 스케줄은 여기를 클릭하여 참고해 주세요.)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대중교통으로 20분, 자동차로 10분,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공간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번 전시를 관람하러 가신다면 이 두 곳을 연계해 함께 보고 오시는 것은 어떨까요?
[주소]
노원문화예술회관 노원아트뮤지엄 (서울시 노원구 중계로 181)
[관람시간]
화~일요일 10:00~19:00 (매주 월요일 휴관, 공휴일 정상 운영)
[오시는 길]
[대중교통]
지하철 이용시,
• 7호선 하계역 3번 출구 → 1141번 버스(노원문화예술회관 하차)
• 7호선 중계역 2번 출구 → 1140번 버스(노원문화예술회관 하차) → 1135번 버스(중계1동 주민센터 하차 후 도보)
• 4호선, 7호선 노원역 1번 출구 → 1142번 버스(은행사거리 하차 후 도보)
• 4호선 상계역 4번 출구 → 1143번, 1140번 버스(노원문화예술회관 하차) → 1142번, 1224번 버스(은행사거리 하차 후 도보)
버스 이용시,
• 지선1140번(인덕대 + 중계동) → 불암초교(하차)
• 지선1141번(석계역 중계본동) → 불암초교(하차)
• 지선1143번(수락산역 중계본동) → 불암초교(하차)
• 지선1131번(석계역 〉 문화예술회관) → 불암초교(하차)
• 지선1224번(청량리 〉 상계4동) → 은행사거리(하차 후 도보)
• 지선1142번(창동역 〉 중계본동) → 은행사거리(하차 후 도보)
• 지선1135번(석계역 은행사거리) → 중계1동사무소(하차 후 도보)
자가용 이용시
• 통일로 중계역에서 우회전 → 을지초등학교에서 우회전 → 직진
• 노원길로 직진하여 상명여고에서 좌회전 → 을지 초등학교에서 우회전 →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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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