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 안나 & 다니엘

2025-02-03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안나 앤 다니엘≫ 전시 포스터


어렸을 적,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새까맣게 변해 바닥에 붙은 껌 조각이 거북이 모습으로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또 어떨 때는 건물 외벽의 문양이 교묘하게 겹쳐져 새의 형상으로 보인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가족들에게 신기하지 않냐고 사진을 찍어서 자랑하곤 했죠.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도심 속 보물 찾기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숨겨진 독특한 형상들을 찾아내는 것이 어린 마음에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연히 마주치는 보물같은 형상을 더 이상 만나지 못했습니다. 껌 조각 하나 없이 길거리가 유난히 깨끗해진 탓일까요? 아니면 이제 제게 길거리는 그저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바삐 걸음을 걷는 과정일 뿐이었던걸까요? 생각해 보니 길을 걷다 우뚝 멈춰 사소한 풀 한 포기, 하늘 속 구름 한 점, 높은 빌딩의 모양새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전시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안나 앤 다니엘≫는 제게 이런 말랑말랑한 유년 시절의 상상력과 동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전시였습니다. 아마 전시를 보고 오시면 공감하실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국내 최초로 열리는 듀오 사진작가 안나 데이비스(Anna Devis)와 다니엘 루에다(Daniel Rueda)의 개인전인데요. 그들은 일상 속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사소한 순간을 유머러스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안나와 다니엘은 건축, 도시, 미니멀리즘에서 영감을 받아 디지털 편집을 배제한 채 일상의 사물과 자연광만을 활용해 일종의 초현실적 장면을 창조합니다.


그들은 작품은 단순히 아름답고 유쾌한 이미지를 넘어 건축과 미술,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며 현대 시각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건축적 요소, 색채, 기하학적 미학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이들의 작품은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질문을 던집니다.


안나 데이비스 작가, 다니엘 루에다 작가


[안나 & 다니엘은 누구?]


안나 데이비스(Anna Devis)와 다니엘 루에다(Daniel Rueda)는 1990년생 스페인 출신 듀오 사진작가로, 스페인 발렌시아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해 건축과 미니멀리즘에서 영감을 받은 독창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들은 둘 다 90년생 동갑내기로, 밝고 낙천적인 성격이 사진 작품 속에서 드러나 닮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들의 에너지 넘치는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현재는 에릭 요한슨, 클라우스 타이만 등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들로 구성된 ‘핫셀블라드 앰버서더(Victor Hasselblad AB)’ 소속으로 활동 중이며, 2020년에는 포브스(Forbes)에서 선정하는 “Forbes 30 Under 30” 2020 유럽(Europe Class of 2020) 문화예술 부문의 아티스트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총 4개 섹션으로 이루어져, 각 테마별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1) ¡Música, Maestro! (음악 대가)에서는 리듬감과 감성적인 요소를 보여주는 음악 테마의 작품 섹션이, 두 번째 2) Curiocities (호기심X도시)에서는 세계 각지의 도시 속 건축적 장소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 3) Ideas come true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는 종이와 소품을 인간의 몸과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들이, 4) What The Hat?! (이게 모자라고?!)에서 상상력과 유머가 돋보이는 모자를 활용한 작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작품 수는 총 90여 점으로, 섹션 별로도 꽤나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 3점을 소개해 드릴게요.


<And There was Music>(2023), Valencia, Spain


<And There was Music>(2023) 은 첫 번째 섹션 ¡Música, Maestro! (음악 대가) 속 한 작품으로, 안나가 손전등을 켜자 그 불빛 아래로 숨겨진 악보가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파란 벽에 맞춰 파란색 긴 원피스를 입고 있고, 손전등 불빛은 아마 두꺼운 패널이나 종이를 이용해서 표현한 게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벽에 이런 악보가 숨겨진 것이 아닌데도 정말 자연스럽습니다. 벽과 동일한 파란색의 의상을 찾는 것도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Vitruvian Woman>, 2018, Berlin, Germany

레오나르도 다 빈치, <Vitruvian man>, 1490년 경, 종이에 은첨필, 24.5 x 34.4cm


<Vitruvian Woman>은 두 번째 2) Curiocities (호기심X도시) 섹션 속 한 작품으로, 제목과 그림 속 안나의 모습을 힌트로 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Vitruvian man>을 오마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기원전 1세기 경,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쓴 ‘건축 10서(De architectura)' 3장 신전 건축 편에서 ‘인체의 건축에 적용되는 비례의 규칙을 신전 건축에 사용해야 한다’고 쓴 대목을 읽고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입니다.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람을 원과 정사각형 안에 꼭 들어맞게 그려 인체를 과학적, 수학적으로 분석해 완벽한 황금비례로 표현했죠.


<Vitruvian Woman> 세부 이미지 1,2,3


놀랍게도, 안나&다니엘의 <Vitruvian Woman>도 가까이에서 보면 손끝, 치맛단 끝자락을 정확하게 건물의 원 모양에 맞추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그린 선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건물의 외곽선을 이용해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거죠!


<Woman with Balloon>, 2021, Valencia, Spain

Banksy, <Girl with Balloon>, 2004, Screenprint in black and red on wove paper, 
70 x 50cm, signed edition 121/150, ⓒPEST CONTROL OFFICE 2023


미술전시를 많이 보러 다니신 분들이라면, 딱 한눈에 어떤 작품을 오마주 했는지 보이실 거에요. 맞아요, 바로 뱅크시의 유명작 중 하나인, <Girl with Balloon>이죠. 날아가는 풍선을 놓쳐 허망하게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인데요. 


뱅크시는 주로 거리나 담벼락, 건물 외벽 등에 그래피티로 그림을 그리며 얼굴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입니다. 그가 2002년 영국 런던의 쇼디치 (Shoreditch) 근교 건물 외벽에 벽화로 그린 버전을 최초로, 2017년까지 영국 외 베들레헴, 시리아, 파리 등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동일한 도상을 그려냈는데요. 이를 회화로 복원한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Banksy, <Girl without Balloon>, 2021, Spray paint and acrylic on canvas mounted on board, Framed by the artist, 142 x 78 x 18cm ⓒPEST CONTROL OFFICE 2023


사실 이 그림이 더욱 유명해지게 된 큰 이슈가 있었어요. 2018년 10월 5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한화 약 15억 원에 낙찰되자마자 이 그림이 액자 바깥으로 흘러 나가면서 절반 이상이 자동으로 갈려 나간 것인데요. 알고 보니 이는 작가가 아무도 모르게 미리 계획한 것으로, 원래 리허설 때는 모두 파쇄되었는데 경매 당일에는 미리 설치한 파쇄기의 오작동으로 딱 부분 절반만 파쇄된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경매 이후 이 그림의 제목은 <Girl with Balloon 풍선을 든 소녀>가 아닌, <Love is in the Bin 사랑은 쓰레기통에>로 변경되었죠.


뱅크시는 이러한 전례 없는 행위를 예술의 상업화와 자본주의 시장을 비판하기 위해 계획했다고 밝혔습니다. 재밌게도 오히려 이 반만 파쇄된 모습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하나의 밈이나 이미지로 소비되고, 결국은 더 비싼 값에 낙찰되었어요.


2018년 10월에 원래 낙찰된 금액은 104만 2,000파운드. 그림이 파쇄된 이후, 2021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1,858만 2,000파운드로 거의 20배 가까이 금액이 올라버렸죠. (그리고 뱅크시는 이 작품의 제목을 다시 <Girl without Balloon>으로 변경합니다. 한 작품이 무려 3번이나 제목이 바뀐 것이죠!)


사람들은 작품의 값을 올리기 위한 짜고 치는 쇼가 아니었냐는 의심을 했지만, 소더비 유럽 현대미술 책임자 알렉스 브랜식(Alex Branczik)는 “We've been Banksy-ed." (우리는 뱅크시 당했다)라는 말을 남기며 소더비 측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적으로 작가의 계획하에 이루어진 일임을 주장했죠. 이 퍼포먼스를 보고 현대미술의 정의와 미술 작품의 가치 평가 과정에 대해 많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풍선을 든 소녀’는 미술의 역사에서 큰 논쟁거리이자, 예술 시장의 새로운 담론을 끌어낸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안나와 다니엘은 그 작품을 까만 풍선을 잡으려고 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새로이 재해석해 냈죠.


이렇듯 그들의 작품은 처음엔 가볍고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그저 가볍고 유쾌하지만은 않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안나와 다니엘이 던지는 재치 있는 상상력을 마음껏 즐기면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며 주변의 예술적 잠재력을 깨닫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


이번 전시는 유료 프라이빗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여 참고해주세요!

파리크라상 이미지 (출처: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예술의 전당의 큰 장점은 전시뿐 아니라 각종 먹거리, 카페, 쇼핑 매장 등이 함께 입점하여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입점된 매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하여 참고해주세요!

 

지도 이미지 (출처: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주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제 7전시실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영업시간]

화-일 10:00~19:00 (40분 전 입장권 구매 및 입장 마감)


[오시는 길]


지하철

1) 3호선

남부터미널역 5번 출구

도보이동 (약 5~10분 소요) or 마을버스 22번(초록색)을 타고 두 정거장 이동


2) 2호선

서초역 3번 출구

마을버스 11번(초록색)을 타고 네 정거장 이동 or 도보이동 (약 20~25분 소요)


3) 4호선

사당역 1번 출구

마을버스 17번(초록색)을 타고 16개 정거장 이동


주차장 및 사전정산기 설치 장소 (출처: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주차]

예술의 전당 주차장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티켓 뒤 바코드를 무인 정산기에 입력하면 평일에는 3시간 4,000원(초과 시 10분당 1,000원) / 주말에는 3시간 6,000원(초과 시 10분 당 1,500원)의 주차 요금이 부과됩니다.


오시는 길, 주차 정보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해주세요!


박수현 도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