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소개할 곳은 바로 ‘마이아트뮤지엄’입니다. 현대인들이 보다 쉽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심 속 예술이 있는 감성공간’ 이라는 비전 아래 지난 2019년 오픈한 ‘마이아트뮤지엄’은, 알폰스 무하전을 개관전으로 시작하여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프랑크 폰타나 등 많은 중요 작가들의 전시를 도맡아 개최한 미술관이기도 해요.
저 또한 마이아트뮤지엄의 전시는 대부분 관람해왔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방문해보셨거나, 혹은 방문하지 않으셨더라도 미술관 이름이 꽤나 익숙하게 들리실 것 같아요. 개관 이래 12번째 전시인 이번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미술의 거장,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은 누굴까요?
로트렉(1864-1891)은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의 미술가로 ‘벨 에포크’ 시대 파리 밤문화를 특유의 매혹적이며 도발적인 필체로 표현한 석판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화가, 판화가, 삽화가로 활동한 그는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고 당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에서 새로운 예술의 다양성을 흡수하고 독창적인 조형성을 개척했으며, 현대 그래픽 포스터의 선구자로 세계 미술사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죠.
특히 이번 전시는 로트렉뿐만 아니라 동시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황금기를 이끌었던 쥘 세레,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 알폰스 무하를 포함한 13명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어 당대의 흐름을 작품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답니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란?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이에요. 1870년 이후, 그러니까 프랑스 정치의 격동기가 차츰 끝나가던 19세기 후반부터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 이전까지의 시기를 일컫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던 안정의 시기이자, 산업혁명을 거치며 번성하던 시대였습니다. 경제적 안정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고, 예술과 문학이 크게 번창하며, 사교와 문화생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 또한 이러한 상황 속 프랑스 몽마르트에서 무희, 연예인, 카바레 인물 등 보헤미안들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1891년부터 1901년, 36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무려 31점의 포스터를 제작하며, 석판화 광고 포스터를 예술의 장르로 끌어올려 고급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던 예술가랍니다.
전시는 총 4부로 나뉘는데요. 제 1부 [보헤미안]은 로트렉이 그 어떠한 화파에도 속하지 않고 다양한 예술 경향을 자유롭게 수용한 그의 보헤미안적 실험정신을 탐구하고, 제 2부 [휴머니스트]에서는 몽마르트 하층계급을 남다른 인간애로 묘사한 로트렉의 인간 중심 회화를 고찰하며 그의 휴머니스트적 면모를 강조합니다.
제 3부 [몽마르트의 별]은 그의 창작 생애 후반기 작품으로 구성되며, 마지막 장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는 로트렉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또다른 예술가들 13명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시 거장들이 즐겨 사용했던 ‘석판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시대의 흐름을 작품을 통해 느껴보시길 바라요!


<저녁의 라 굴뤼> La Goulue Les Soirs, 1891, 석판화 Lithograph on paper, 24.7cm x 31.7cm

<물랑 루즈: 라 굴뤼> Moulin Rouge: La Goulue, 1891, 석판화 Lithograph on paper,
195 x 119.5cm(MOMA 정보 기준)
첫 번째로 추천드릴 작품은 바로 <저녁의 라 굴뤼> (1891)입니다. 이 작품은 로트렉의 대표작이자 첫 번째 석판화 작품인 <물랑 루즈: 라 굴뤼>와 동일한 구성의 스케치 버전 석판화로, 카바레 스타인 여성 댄서 ‘라 굴뤼(La Goulue)’와 그녀의 파트너인 남성 댄서 ‘발랑탱 르 데소세(Valentin Le Désossé)’를 묘사한 작품이에요. 라 굴뤼는 캉캉을 추면서 발로 남성 관객의 모자를 벗기는 묘기를 보여주는 등 에너지가 넘치는 발차기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검은색의 그림자처럼 표현된 관중들 사이 중앙에 위치한 그녀의 모습이 매우 눈에 띄죠. <물랑 루즈: 라 굴뤼>를 보면 뒷 관객들은 더 까맣게 평면적으로 표현되어 판화의 느낌을 더욱 살리고 있고, 라 굴뤼의 옷이 붉은 물방울 무늬와 붉은 스타킹으로 표현되어 훨씬 더 주인공으로 강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라 굴뤼보다 더 근경에 위치했지만 디테일이 생략되어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중절모를 쓴 남성이 바로 발랑탱 르 데소세입니다. 길쭉하게 표현되어 있는 그는, 이름 자체가 ‘뼈없는 발랑탱’이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유연한 몸을 가졌다고 합니다.
전시장에 가시면 ‘오른편에 눈에 띄게 튀어나온 턱과 매부리코를 가진 독특한 옆모습으로 표현된 발랑탱 르 데소세는 검은 양복에 모자를 쓰고 긴 팔과 긴 다리로 유연하게 춤을 췄다고 알려지는데, 이는 그의 길쭉한 몸으로 표현되어 있죠. 라 굴뤼의 상반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흑백으로 묘사되었는데 특히 로트렉은 검은색 선을 교차하는 크로스 해칭 기법을 통해 명암을 나타냈습니다.’라는 캡션 설명이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기법에 대한 부가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사실 ‘크로스 해칭’ 기법은 판화만의 기법이라기보다는 소묘나 연필 스케치 등 선형 매체에서 어둠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기법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아요. 어둠을 표현할 때 전부 다 새카맣게 칠하기는 시간이 들다보니, 선을 여러 방향으로 교차해서 밀도를 쌓으면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어둠을 표현하곤 하거든요. 석판화보다는 인그레이빙이나 에칭 등 동판화에서 더 자주 보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로트렉이 여성 댄서 ‘라 굴뤼’에게 유일하게 색과 패턴을 부여하고 나머지 남성 댄서나 관중들과 같은 부수적인 인물들은 약간의 선만 사용해 간략하게 표현한 것을 보니, 캉캉 댄스를 추는 여성 댄서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확실해보입니다.

<기대어 있는 여인-피로, 엘르 연작> Femme sur le dos-Lassitude, Elles, 1896, 석판화 Lithograph on paper, 40.3 x 52.3cm
두 번째로 추천드릴 작품은 <기대어 있는 여인-피로, 엘르 연작>(1896)입니다. 이 작품 또한 석판 기법을 사용했네요. 연한 붉은색-갈색톤의 색연필로 손에 힘을 풀고 가볍게 그려낸 것만 같습니다. 석판으로 여러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색연필이나 크레용같은 표현도 충분히 낼 수 있답니다. 그래서 캡션을 보지 않고서는 당최 판화인지, 아니면 드로잉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판화의 재미이자 회화적 특징이기도 해요.

<다음 날> The Day After, 종이에 드라이포인트 Drypoint, 46.7 x 53.5cm
저는 이 작품이 뭉크의 <다음 날> (1891)과 비슷해보였습니다. ‘드라이포인트’라는 판화 기법을 사용한 이 작품 속 여성은 우측 하단의 테이블 위에 술병과 술잔이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한 잔 들이키고 속된 말로 ‘뻗어버린’, 숙취 가득한 다음 날 아침의 풍경처럼 보입니다. 로트렉의 작품과 비교해 훨씬 더 명확한 선을 사용했고, 주인공 주변 풍경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한 상황 묘사가 돋보이죠.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 작품 속 여인이 술을 마시고 그냥 뻗어버린 상황인지, 혹은 너무나 힘든 고통을 겪고 이를 잊기 위해 술의 힘을 빌려서 쓰러진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술병도 다른 종류로 두 병, 잔도 두 병이라서 다른 사람과 마신건 아닐까요?) 1909년 오슬로 국립박물관에 이 작품을 전시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술 취해 쓰러져 잠든 매춘부를 그린 그림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는 이 그림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
뭉크의 작품과 비교해 로트렉의 작품은 상황 묘사가 훨씬 더 뚜렷하지 않습니다. 선과 색 모두 매우 희미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아야 침대에 뻗은 여성의 얼굴과 두 다리가 보일랑 말랑하죠.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매우 직접적으로 상황을 설명합니다. <기대어 있는 여인-피로, 엘르 연작>. Elles(엘르) 연작은 1896년에 발표된 로트렉의 석판화 연작으로, 당시 파리의 매춘업과 여성의 삶을 탐구한 작품들이에요. 매춘부를 에로틱하고 상업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뭇여성과 같이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모습들을 표현한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죠.
그래서 그림 속 장면 또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벌거벗고 요염한 자세와 저돌적인 눈빛을 한 채로 누워있는 여성의 모습이나, 동시대에 활동했던 판화가 루이 르그랑(Louis Auguste Mathieu Legrand)의 그림들 속 에로틱한 포즈가 아닌 그저 잠을 자고, 거울을 보는 아주 평범한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은 프랑스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자의인지 타인인지는 모르나 장애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화려한 귀족 문화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민들의 다채로운 밤거리와 유흥 문화를 배경으로, 직위나 직업에 상관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그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직업과 신분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을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이아트뮤지엄은 평일 (월-금) 11시, 14시, 16시 (3회) / 주말(토-일) 13시, 15시, 17시 (3회)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장 상황에 따라 사전 공지없이 변경될 수 있으니, 관람 예정이라면 사전에 공식 홈페이지를 꼭 확인해보세요!


미술관 바로 옆, 카페 트레스텔레(Tre Stelle)가 있습니다. 전시보고 나서 가볍게 커피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카페에요.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18 섬유센터빌딩 B1 (대치동 994-31)
[주차]
전시 티켓 관람객에게 주차할인권을 판매합니다. 최초 2시간동안 3,000원 / 이후 추가 10분 당 1,000원의 주차 요금이 부과됩니다.
[대중교통]
지하철: 2호선 삼성역 4번 출구로 나와 도보를 따라 약 150m 이동하시면 됩니다.
박수현 에디터

당첨자 발표: 2024년 12월 26일(목)

오늘 소개할 곳은 바로 ‘마이아트뮤지엄’입니다. 현대인들이 보다 쉽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심 속 예술이 있는 감성공간’ 이라는 비전 아래 지난 2019년 오픈한 ‘마이아트뮤지엄’은, 알폰스 무하전을 개관전으로 시작하여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프랑크 폰타나 등 많은 중요 작가들의 전시를 도맡아 개최한 미술관이기도 해요.
저 또한 마이아트뮤지엄의 전시는 대부분 관람해왔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방문해보셨거나, 혹은 방문하지 않으셨더라도 미술관 이름이 꽤나 익숙하게 들리실 것 같아요. 개관 이래 12번째 전시인 이번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미술의 거장,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은 누굴까요?
로트렉(1864-1891)은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의 미술가로 ‘벨 에포크’ 시대 파리 밤문화를 특유의 매혹적이며 도발적인 필체로 표현한 석판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화가, 판화가, 삽화가로 활동한 그는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고 당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에서 새로운 예술의 다양성을 흡수하고 독창적인 조형성을 개척했으며, 현대 그래픽 포스터의 선구자로 세계 미술사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죠.
특히 이번 전시는 로트렉뿐만 아니라 동시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황금기를 이끌었던 쥘 세레,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 알폰스 무하를 포함한 13명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어 당대의 흐름을 작품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답니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란?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이에요. 1870년 이후, 그러니까 프랑스 정치의 격동기가 차츰 끝나가던 19세기 후반부터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 이전까지의 시기를 일컫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던 안정의 시기이자, 산업혁명을 거치며 번성하던 시대였습니다. 경제적 안정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고, 예술과 문학이 크게 번창하며, 사교와 문화생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 또한 이러한 상황 속 프랑스 몽마르트에서 무희, 연예인, 카바레 인물 등 보헤미안들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1891년부터 1901년, 36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무려 31점의 포스터를 제작하며, 석판화 광고 포스터를 예술의 장르로 끌어올려 고급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던 예술가랍니다.
전시는 총 4부로 나뉘는데요. 제 1부 [보헤미안]은 로트렉이 그 어떠한 화파에도 속하지 않고 다양한 예술 경향을 자유롭게 수용한 그의 보헤미안적 실험정신을 탐구하고, 제 2부 [휴머니스트]에서는 몽마르트 하층계급을 남다른 인간애로 묘사한 로트렉의 인간 중심 회화를 고찰하며 그의 휴머니스트적 면모를 강조합니다.
제 3부 [몽마르트의 별]은 그의 창작 생애 후반기 작품으로 구성되며, 마지막 장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는 로트렉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또다른 예술가들 13명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시 거장들이 즐겨 사용했던 ‘석판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시대의 흐름을 작품을 통해 느껴보시길 바라요!
<저녁의 라 굴뤼> La Goulue Les Soirs, 1891, 석판화 Lithograph on paper, 24.7cm x 31.7cm
<물랑 루즈: 라 굴뤼> Moulin Rouge: La Goulue, 1891, 석판화 Lithograph on paper,
195 x 119.5cm(MOMA 정보 기준)
첫 번째로 추천드릴 작품은 바로 <저녁의 라 굴뤼> (1891)입니다. 이 작품은 로트렉의 대표작이자 첫 번째 석판화 작품인 <물랑 루즈: 라 굴뤼>와 동일한 구성의 스케치 버전 석판화로, 카바레 스타인 여성 댄서 ‘라 굴뤼(La Goulue)’와 그녀의 파트너인 남성 댄서 ‘발랑탱 르 데소세(Valentin Le Désossé)’를 묘사한 작품이에요. 라 굴뤼는 캉캉을 추면서 발로 남성 관객의 모자를 벗기는 묘기를 보여주는 등 에너지가 넘치는 발차기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검은색의 그림자처럼 표현된 관중들 사이 중앙에 위치한 그녀의 모습이 매우 눈에 띄죠. <물랑 루즈: 라 굴뤼>를 보면 뒷 관객들은 더 까맣게 평면적으로 표현되어 판화의 느낌을 더욱 살리고 있고, 라 굴뤼의 옷이 붉은 물방울 무늬와 붉은 스타킹으로 표현되어 훨씬 더 주인공으로 강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라 굴뤼보다 더 근경에 위치했지만 디테일이 생략되어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중절모를 쓴 남성이 바로 발랑탱 르 데소세입니다. 길쭉하게 표현되어 있는 그는, 이름 자체가 ‘뼈없는 발랑탱’이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유연한 몸을 가졌다고 합니다.
전시장에 가시면 ‘오른편에 눈에 띄게 튀어나온 턱과 매부리코를 가진 독특한 옆모습으로 표현된 발랑탱 르 데소세는 검은 양복에 모자를 쓰고 긴 팔과 긴 다리로 유연하게 춤을 췄다고 알려지는데, 이는 그의 길쭉한 몸으로 표현되어 있죠. 라 굴뤼의 상반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흑백으로 묘사되었는데 특히 로트렉은 검은색 선을 교차하는 크로스 해칭 기법을 통해 명암을 나타냈습니다.’라는 캡션 설명이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기법에 대한 부가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사실 ‘크로스 해칭’ 기법은 판화만의 기법이라기보다는 소묘나 연필 스케치 등 선형 매체에서 어둠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기법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아요. 어둠을 표현할 때 전부 다 새카맣게 칠하기는 시간이 들다보니, 선을 여러 방향으로 교차해서 밀도를 쌓으면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어둠을 표현하곤 하거든요. 석판화보다는 인그레이빙이나 에칭 등 동판화에서 더 자주 보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로트렉이 여성 댄서 ‘라 굴뤼’에게 유일하게 색과 패턴을 부여하고 나머지 남성 댄서나 관중들과 같은 부수적인 인물들은 약간의 선만 사용해 간략하게 표현한 것을 보니, 캉캉 댄스를 추는 여성 댄서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확실해보입니다.
<기대어 있는 여인-피로, 엘르 연작> Femme sur le dos-Lassitude, Elles, 1896, 석판화 Lithograph on paper, 40.3 x 52.3cm
두 번째로 추천드릴 작품은 <기대어 있는 여인-피로, 엘르 연작>(1896)입니다. 이 작품 또한 석판 기법을 사용했네요. 연한 붉은색-갈색톤의 색연필로 손에 힘을 풀고 가볍게 그려낸 것만 같습니다. 석판으로 여러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색연필이나 크레용같은 표현도 충분히 낼 수 있답니다. 그래서 캡션을 보지 않고서는 당최 판화인지, 아니면 드로잉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판화의 재미이자 회화적 특징이기도 해요.
<다음 날> The Day After, 종이에 드라이포인트 Drypoint, 46.7 x 53.5cm
저는 이 작품이 뭉크의 <다음 날> (1891)과 비슷해보였습니다. ‘드라이포인트’라는 판화 기법을 사용한 이 작품 속 여성은 우측 하단의 테이블 위에 술병과 술잔이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한 잔 들이키고 속된 말로 ‘뻗어버린’, 숙취 가득한 다음 날 아침의 풍경처럼 보입니다. 로트렉의 작품과 비교해 훨씬 더 명확한 선을 사용했고, 주인공 주변 풍경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한 상황 묘사가 돋보이죠.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 작품 속 여인이 술을 마시고 그냥 뻗어버린 상황인지, 혹은 너무나 힘든 고통을 겪고 이를 잊기 위해 술의 힘을 빌려서 쓰러진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술병도 다른 종류로 두 병, 잔도 두 병이라서 다른 사람과 마신건 아닐까요?) 1909년 오슬로 국립박물관에 이 작품을 전시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술 취해 쓰러져 잠든 매춘부를 그린 그림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는 이 그림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
뭉크의 작품과 비교해 로트렉의 작품은 상황 묘사가 훨씬 더 뚜렷하지 않습니다. 선과 색 모두 매우 희미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아야 침대에 뻗은 여성의 얼굴과 두 다리가 보일랑 말랑하죠.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매우 직접적으로 상황을 설명합니다. <기대어 있는 여인-피로, 엘르 연작>. Elles(엘르) 연작은 1896년에 발표된 로트렉의 석판화 연작으로, 당시 파리의 매춘업과 여성의 삶을 탐구한 작품들이에요. 매춘부를 에로틱하고 상업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뭇여성과 같이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모습들을 표현한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죠.
그래서 그림 속 장면 또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벌거벗고 요염한 자세와 저돌적인 눈빛을 한 채로 누워있는 여성의 모습이나, 동시대에 활동했던 판화가 루이 르그랑(Louis Auguste Mathieu Legrand)의 그림들 속 에로틱한 포즈가 아닌 그저 잠을 자고, 거울을 보는 아주 평범한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은 프랑스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자의인지 타인인지는 모르나 장애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화려한 귀족 문화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민들의 다채로운 밤거리와 유흥 문화를 배경으로, 직위나 직업에 상관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그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직업과 신분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을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이아트뮤지엄은 평일 (월-금) 11시, 14시, 16시 (3회) / 주말(토-일) 13시, 15시, 17시 (3회)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장 상황에 따라 사전 공지없이 변경될 수 있으니, 관람 예정이라면 사전에 공식 홈페이지를 꼭 확인해보세요!
미술관 바로 옆, 카페 트레스텔레(Tre Stelle)가 있습니다. 전시보고 나서 가볍게 커피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카페에요.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18 섬유센터빌딩 B1 (대치동 994-31)
[주차]
전시 티켓 관람객에게 주차할인권을 판매합니다. 최초 2시간동안 3,000원 / 이후 추가 10분 당 1,000원의 주차 요금이 부과됩니다.
[대중교통]
지하철: 2호선 삼성역 4번 출구로 나와 도보를 따라 약 150m 이동하시면 됩니다.
박수현 에디터
당첨자 발표: 2024년 12월 26일(목)